초록 잎으로 둘러싸인 영감의 공간, 최소식물원

‘어떤 꽃은 봄에, 어떤 꽃은 가을에/ 같은 줄기에서도 꽃이 피는 순서가 있대/ 늦게 피는 것이 뒤처진 게 아니듯/ 우리는 우리만의 시간을 사는 거야’ (조동희의 ‘꽃차례’ 중)

서정적인 노랫말로 많은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조동희 작사가가 서울 연희동에 최소식물원이라는 아담한 식물 공간을 열었다. 그곳을 찾아 그녀가 사랑하는 식물과 음악,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이 조동희

인터뷰어 유선우

© 피치바이피치

최소식물원은 어떤 공간인가요?

'낮에는 식물원, 밤에는 문화원'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어요. 낮에는 식물을 판매하고 저녁에는 작사 수업을 열죠.

이름에 담긴 특별한 뜻이 있을까요?

제가 운영 중인 레이블 ‘최소우주’에서 최소를 따와서 지었어요. 최소라는 단어엔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어요. 요즘은 뭐든 빠르게, 크게만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과연 내가 주워 담을 수 있나? 지속 가능할까 싶었죠. 음악을 오래 하면서 여러 흥망성쇠를 지켜보다 보니, 지속 가능성과 대체 불가능성이 삶의 중요한 가치가 되었거든요. 작아지면 알차지잖아요. 작고도 알차게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누구나 자기 책상 위에 최소한의 식물원을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지었죠. ‘최소우주’에서 우주는 사람을 뜻해요. 저는 우리 모두가 작지만 완전한 하나의 우주라고 생각하거든요. 각자의 우주를 가진 사람들이 만나 관계를 맺는다는 의미도 있고요.

오랫동안 음악가이자 작사가로 활동하고 있는데, 식물을 매개로 한 공간을 열게 된 계기가 있나요?

음악 활동을 하면서 예민해질 때도 있고, 우울감이 찾아올 때도 잦았어요. 원래 식물을 좋아했는데, 아이들이 다 크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하나둘 키우기 시작했죠. 식물이 많아져서 집은 물론 서촌에 있던 작업실까지 포화 상태가 돼서 앉을 자리도 없었어요. (웃음) 지나가던 사람들이 식물을 사러 들어오기도 하고, 식물 팝업 스토어를 열어달라는 친구들도 있어서 한두 번 팔아봤는데, 그걸 계기로 방탄소년단 뷔의 집에 플랜테리어를 맡게 됐어요. 그 작업을 하면서 식물이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전한다는 걸 확인했죠. 마침 작업실도 포화 상태라 큰 테라스가 있는 공간을 찾다가 연희동에 최소식물원을 열었어요.

식물을 좋아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아버지가 식물을 좋아하셔서 어렸을 때부터 집에 식물이 많았어요. 늘 나뭇잎을 반짝반짝하게 닦으셨는데, 어린 마음엔 이해가 안 됐지만 초록이 주는 안정감은 마음 한편에 남아 있었죠. 그러다 미국에서 조경 일을 하는 조카의 집에 가 보고 다시 식물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조카가 마당에서 장미를 꺾어와 자기 전에 제 머리맡에 놓아주는데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아침 햇살 아래서 식물을 가꾸고, 마당에서 수확한 채소로 샐러드를 만들어 먹는 모습이 참 건강하고 행복해 보였어요. ‘이게 사는 거지’ 싶고요.

집으로 돌아온 뒤 나무를 새로 들이기 시작했는데, 나무가 자꾸 죽는 거예요. 혼자 영상을 보며 공부를 하다가 원예 관련 자격증을 땄어요. 줄기뿐이던 죽어가는 나무에서 새잎이 돋아나는 걸 보면서 식물에 완전히 매료됐어요. 새잎 도파민에 걸린 거죠. (웃음) 식물은 보고만 있어도 너무 행복해요. 하루하루가 기다려지고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햇살이 좋으면 햇살이 좋은 대로 계절과 날씨에 감사하게 되는 거예요. 시간에도 마찬가지고요. 영양제를 아무리 열심히 줘도 결국 시간이 지나야 자라거든요.  그 과정에서 더 사유하게 되고 계절을 있는 그대로 느끼면서 약간의 우울감도 찾아올 겨를 없이 행복감을 많이 느끼게 됐어요.

식물은 저마다 자라는 속도도, 꽃을 피우는 시기도 다르잖아요. 오랫동안 식물을 지켜보면서 삶을 대하는 태도나 생각이 달라진 부분이 있을까요?

정말 많이 달라졌어요. 이곳을 둘러보면 식물의 크기도, 색깔도, 모양도 전부 다르잖아요. 꽃을 피우는 시기도 제각각이고요.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모두가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태도가 더 확고해졌죠.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나무도 버리지 않고 기다려주면 충분한 빛과 물, 바람을 만나 언젠가 새잎을 틔워내거든요. ‘시간에게’라는 제 곡에 ‘시간만이 답을 주었네’라는 구절이 있어요. 기다려야만, 시간이 지나야만 되는 것이 있다는 걸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최소식물원에선 어떤 식물을 만날 수 있나요?

제가 좋아하는 안스리움이나 알로카시아 같은 천남성과 식물이 많아요. 일반 화원에서는 보기 어려운 희귀식물이 많지만 10만 원 안팎의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소개하려고 하죠. 흔하지 않은 식물을 선물하고 싶다는 분들도 계셔서 흙부터 화분까지 정성껏 준비해 보내드리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식물의 수형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모양을 잡고 손질하는 데 신경을 많이 써요. 최근에는 아스파라거스 종류에도 관심이 생겼어요.

오랫동안 작사를 해오셨는데, 요즘은 주로 어디에서 영감을 얻으시는지 궁금해요.

작사를 하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예요. 예전에는 사람이나 책에서 얻는다고 답했는데, 지금은 ‘어디서든 얻어야 한다’고 얘기해요. 가령 옆에 놓인 식물 하나를 보고도 글을 써낼 수 있어야 하죠. 작사 수업에서도 비슷한 훈련을 해요. 식물에게 말을 시켜보거나 편지를 써보라고 하죠. 처음엔 수강생들도 황당해하지만 결국 다들 써내요. 자세히 관찰하다 보면 마음의 다른 부분이 건드려지거든요. 무엇을 보든 느낄 수 있는 마음을 훈련하는 거죠. 좋지 않은 경험일지라도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아픈 경험 역시 나를 단련하고 성장시키니까요.

작사 수업도 이 공간에서 함께 하고 있다고요.

처음에는 작사에 관심 있는 일반인들이 취미로 참여하는 입문반만 운영했어요. 그런데 수업을 마친 분들이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냐”고 묻더라고요. (웃음) 직접 쓴 가사에 곡을 붙이고 녹음도 해보는 심화반을 만들었죠. 실제로 작사가가 되고 싶어하는 분들도 있어서 프로반을 열었고요. 지금이 첫 기수인데, 음절을 따는 것부터 제게 의뢰가 들어 온 곡의 가사를 같이 써 보는 것까지 해보고 있어요. 식물이 가득한 공간에서 수업을 하니 공기가 좋아서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에 안정이 생겨요. 관찰할 게 많아서 더 좋고요.

지난달에 출간된 포토에세이 <흔들리며 남은 것들>에는 오랫동안 필름 카메라로 기록한 사진과 글을 담으셨는데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풍경이나 장면이 있나요?

2~3년에 걸쳐 찍은 필름 사진을 담았어요. 제주도에서 특히 많이 찍었죠. 실재하는 풍경과 그림자가 한 프레임에 담기는 모습을 담은 사진과 제가 좋아하는 선생님 댁에 가서 찍어드린 사진을 꼽을게요. 제주도의 해녀 음식 명인이신데, 제가 너무 좋아하는 분이에요. 코모레비(木漏れ日, 나뭇잎 사이로 스며 나오는 햇빛을 뜻하는 일본어)를 남긴 사진도 굉장히 좋아하고요.

좋아하는 여행지가 있나요?

인도를 정말 좋아해서 5번 정도 여행했어요. 남부에 오로빌(Auroville)이라는 곳이 있거든요. 프랑스 출신의 설립자가 이상적인 공동체를 꿈꾸며 만든 도시인데, 그곳에 가려고 푸두체리(Puducherry, 옛 이름은 폰티체리)라는 해안 도시에 머문 적이 있어요. 자전거를 타고 박물관과 미술관을 돌아다녔던 기억이 참 좋게 남아 있어요. 동화 속에 들어온 것 같다가도 시내로 나가면 세련된 풍경이 펼쳐지는 대비도 재밌었지만 무엇보다 편견이 사라져요. 바라나시의 갠지스강에 갔을 때 정말 충격을 받았거든요. 시신이나 물소 사체가 막 떠다니고, 새들이 그걸 쪼아 먹기도 하는데, 바로 옆에서는 사람들이 목욕하고 양치하고 기도를 해요. 그 모든 일이 하나의 강에서 벌어지는 거예요. 처음에는 기겁했는데, 이상하게 또 평화로웠어요. 그들에게는 그 강이 성스러운 어머니의 강인 거잖아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정말 맞는 걸까 싶었어요. 거기서는 시간도 다르게 흐르는 것 같고,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 자체가 달라지면서 생각이 열리더라고요.

식물 혹은 음악과 함께하는 동희님만의 여행법이 있는지도 궁금해요.

예전에는 여행을 가면 악기점부터 찾아갔어요. 인도에 40일 정도 머물던 때엔 시타르와 사로드 같은 전통 악기를 배우고, 선생님을 따라 공연도 보러 갔죠.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연주하고 노래하는 것도 좋아했어요. 인도의 타르 사막이나 모로코 사막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같이 연주를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죠. 인도 콜카타(Kolkata)에서는 마더 테레사 수녀의 집(The Mother House)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장애 아동들에게 기타 치는 법을 알려주고 함께 노래를 만들었어요. 그때 음악이 누군가에게 선물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죠. 음악으로 사람들과 금세 친해질 수 있잖아요. 요즘은 여행을 가면 식물원을 먼저 검색해요. (웃음) 도쿄에 가도 식물원이나 식물 가게를 찾아다니죠. 식물은 가져올 수 없으니까 대신 독특한 화분이나 식물용품을 사 오곤 해요.

앞으로 최소식물원은 어떤 공간이 될까요? 새롭게 시도해보고 싶은 일도 궁금합니다.

최소식물원을 열고 나서 가장 기뻤을 때가 동네 단골분들이 생긴 거예요. 정말 편하게 대해주시는 분도 많고, 식물 상담도 하시고요. 앞으로도 식물 사랑방 역할을 하며 식물이 주는 행복감을 전파하고 싶어요. 지금은 저녁에 작사 수업만 열고 있는데, 여유가 되면 북 토크나 작은 공연을 열어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