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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따라 떠나는 우리 땅 여행 - 입춘에서 대서까지

봄을 여는 입춘에서 삼복더위의 대서까지. 24절기를 따라가는 다큐멘터리 사진가 이상엽이 기록한 우리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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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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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sonal days — 절기따라 떠나는 우리 땅 여행 - 입춘에서 대서까지

다큐멘터리 사진가이자 르포르타주 작가 이상엽이 모은 우리나라 24절기의 풍경.

글 ∙ 사진 * 이상엽
* <레닌이 있는 풍경> <파미르에서 원난까지> <변경지도> <은어는 안녕하신가?> 등의 책을 펴냈다.

봄이 시작되는 입춘에 용인 고기리에 있는 초등학교에 내린 눈
© 이상엽
봄의 시작을 알리는 하얀 눈의 고기리 풍경이다.
© 이상엽

입춘 立春 2월 4일
누구나 경험하는 것이지만, 졸업식이 열리는 날은 꼭 춥다. 봄이 오는 것을 겨울이 시샘하듯 말이다. 막내 졸업식이 있던 날 참으로 푸짐하게 눈이 왔다. 입춘은 원래 2월 초순이지만 이제 1월 중하순이면 입춘 날씨다. 그런데 입춘이란 절기의 날씨는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1월 내내 평균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다. 잠깐 추울 수 있어도, 1월과 2월의 평균 온도는 영상을 기록한다.
입춘은 원래 태양의 황경이 315도에 드는 때이며, 양력으로 2월 3~4일에 들었다. 일 년 중 봄이 시작하는 날이라 하여 입춘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대개 이때를 즈음해 설날이 온다. 예로부터 입춘이 되면 동풍이 불고, 얼음이 풀리며, 동면하던 벌레들이 깨어난다 했다. 원래 입춘이라는 명칭은 중국의 화북 지방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 시기 기상이 매년 불규칙해 이때를 전후한 시기가 일 년 중 가장 추운 해도 있다. 이런 날이 꼭 졸업식이더라.

우수에 충청북도 달래강의 자작나무 숲의 모습이다.
© 이상엽

우수 雨水 2월 19일
충북 달래강 변에는 자작나무가 밀집해 자라고 있었다. 시베리아의 툰드라를 떠오르게 하는 이 나무는 흰 수피로 보기가 좋고 쓰임새도 많은 나무다. 하지만 이곳에서 조금 남쪽인 충남으로 내려가면 기후가 따뜻해 말라 죽는다. 충북이 수목생장 한계선인 셈이다.
입춘 다음 절기인 우수는 눈과 얼음이 녹아 물이 된다는 절기이니 비로소 진짜 봄이다. 달력에 기록된 우수는 2월 20일 경이지만 기후변화로 절기도 변해 2월 초면 우수다. 태양이 황경 330도에 있을 때 우수가 된다. 우수가 되면 수달이 물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아 바위에 늘어놓는다고 한다. 이것을 수달이 수신에게 제사를 지낸다고 해석해 ‘달제어’라고 불렀다. 이 시기에는 기러기도 북으로 날아가며, 초목에는 새싹이 핀다. 달래강은 실제로 수달을 볼 수 있는 생태 환경이 좋은 곳이다. 카메라 메고 걷기 좋은 강변이 이어진다.

개구리가 깨어나는 경칩에 경북 낙동강엔 심한 가움이 들었다.
© 이상엽
경상북도 낙동강에 가뭄으로 말라붙은 조개 사진이다.
© 이상엽

경칩 驚蟄 3월 5일
가뭄으로 말라붙은 경북 안동호의 모습이다. 겁 많은 고라니가 대낮에 나와 물을 찾고 있다. 흔치 않은 풍경인데, 그만큼 봄 가뭄으로 목이 탄다는 증거일 것이다. 경북에는 가뭄이 매년 찾아 든다. 저수지들의 저수량이 50퍼센트 미만으로 줄어 농사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 심할 때는 수몰리가 물 밖으로 드러나 초현실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집은 사라졌지만, 길이 선명하게 이어지고 가로수 밑동도 여전하다. 그래도 이맘때 경칩이란 절기는 익숙하기도 하고 정겹게도 느껴진다. “개구리가 깨어나는 절기!”. 놀랄 ‘경’에 벌레 ‘칩’을 사용하는 이 말은 천둥이 치고 땅에서 벌레가 놀라 깨어난다는 뜻이다. 비가 오고 대지가 생명으로 깨어난다는 것. 3월이지만 요즘 변화된 절기로 보면 대충 2월 말이 경칩이다. 옛사람들은 들에서 씀바귀를 캐고 저수지에서 개구리 알을 건져 국을 끓였다고 한다. 개구리알국이라? 이건 좀, 가난이 슬프다.

춘분에 부산의 산복도로의 사진이다.
부산 산복도로
© 이상엽

춘분 春分 3월 21일  
부산의 산허리를 깎아 낸 산복도로는 동네 곳곳을 연결하는 독특한 도로 시스템이다. 이 도로는 원래 일제강점기 때 부족한 주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었고, 경사가 있는 토지에 집과 건물을 짓기 위해 사람들이 산을 깎기 시작했다. 당시야 고생스러운 삶의 상징이었겠지만 오늘날 산복도로는 부산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독특한 시각을 제공한다. 춘분의 봄 날씨에 산복도로를 따라 걸으면 다양한 상점과 갤러리, 식당을 발견할 수 있다. 덤으로 주변의 멋진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24절기의 네 번째 절기인 춘분은 경칩과 청명의 중간에 드는 절기로 양력 3월 21일이다.
춘분은 기후 절기와는 상관없이 태양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향하여 적도를 통과하는 점, 즉 하루가 낮과 밤으로 정확히 나뉘는 천문현상이다. 낮과 밤처럼 음양의 반반씩 갈리는 때라 고려와 조선의 왕실은 춘분에 빙고에서 얼음을 꺼내며 제를 지냈다고 한다. 이때부터 빙고의 얼음은 녹기 시작했을 것이다.

청명_제주맥주의 고장 제주 청보리밭의 사진이다.
© 이상엽

청명 淸明 4월 5일
제주도의 황홀한 청보리밭 풍경이다. 4월 초 곡우가 오기 전까지 바람과 비가 제주를 자주 찾는다. 출렁이는 보리밭에 취한다. 제주도는 이 보리를 이용해 맥주 브랜드도 출시했다. 언젠가는 제주도가 맥주의 성지가 될지 모르겠다.
한반도의 기후변화로 크게 달라진 절기는 청명이다. 원래는 4월 5일쯤인데, 20일쯤 당겨져 춘분과 비슷한 시기가 되어 버렸다. 청명한 하늘 아래 식목을 하던 그 절기는 3월이 되었으니 식목일도 당겨야 할지 모르겠다. 실제 식목일이 청명인 까닭은 나무가 얼거나 메마르지 않는 적당한 절기로, 아이가 어른이 되면 농을 짜는데 쓸 목재를 얻기 위해서였다. 또 청명은 한식(寒食)과도 겹치는데, 춘추전국 시대 개자추의 이야기를 담은 한식은 기후 절기를 반영하는 날이 아니니 넘어가기로 하자. 다만, 이때는 제상에 술 대신 차를 올렸다고 한다. 요즘 제상에 차를 올리는 집은 드문 것 같다.

비가 내리는 경북 김천 직지사의 풍경이다.
© 이상엽
곡우_ 경북 김천의 직지사 계곡이다.
© 이상엽

곡우 穀雨 4월 20일
경북 김천 직지사의 비 풍경이다. 곡우의 비를 맞은 기와는 반짝이고 나무의 새잎들은 무성하다. 걷다 보니, 직지사 담벼락에 꽃이 흐드러지게 폈다. 공양을 준비 중인지 굴뚝에서 연기가 솔솔 피어오른다. 4월에 든 절기는 4월 5일쯤의 청명과 4월 20일쯤의 곡우지만, 변화된 기후로 인해 곡우와 입하로 바뀌었다. 4월 초까지는 청명이 이어지다가 4월 중순인 14일쯤 곡우고, 27일쯤은 입하의 날씨다. 곡우는 24절기의 여섯 번째 절기로 말 그대로 봄비가 내려 백 가지 곡식을 기름지게 한다는 의미다.
24절기에 대한 책을 쓴 농부 안철환은 “곡우가 되면 농부들은 정신없이 바빠진다. 춘분 때까지만 해도 사실 농한기의 여운이 남아 농부의 입가에는 여전히 하품이 맴돈다. 청명이 되어 따듯한 햇살에 막걸리라도 한 대접 목을 축이며 점심을 먹은 뒤에는 졸음이 찾아온다. 그런데 언제 그랬냐는 듯이 청명이 지나면 정신이 없다. 강낭콩에 완두콩을 심고 얼갈이 아욱 시금치 홍당무 상추를 이어 심노라면 정신없이 내달린 기분이다.”라고 했다.

어린이날이자 입하인 여름의 시작 대전의 동물원에 북극곰이 더위를 먹었다.
대전 동물원
© 이상엽
입하이자 어린이날에 대전의 동물원에 물개 사진
© 이상엽

입하 立夏 5월 5일
동물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동물은 정해져 있다. 고양이과의 대형 포유류인 사자와 호랑이가 으뜸일 테고, 거대한 몸집을 가진 코끼리나 기린이 그 다음 될 듯하다. 나이가 들어도 이런 동물을 가까이서 보면 정말 신기하다. 그런데 참으로 이 땅의 기후와 어울리지 않는 동물이 있다. 북극곰이다. 저렇게 추운 곳에서 진화한 거대한 동물이 이렇게 더운 날 어찌 견딜까? 아니나 다를까, 북극곰은 완전히 늘어져 미동도 하지 않는다. 아마도 북극곰은 고향이 그리운 듯하다. 하지만 너무 더워 꼼짝할 수 없다. 기후변화로 인해 회색곰과 교잡이 계속 생기면 이 곰처럼 순혈의 북극곰은 동물원에서나 구경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입하는 여름의 시작이다. 5월 초면 여름이 시작된다니 기후변화를 실감한다. 이때쯤이면 제주도 청보리를 패기 시작해 입하를 맥추(麥秋)라고도 한다. 봄기운은 완전히 사라지고 산과 들은 초록 일색이다. 밤이면 집 밖에서 개구리 우는 소리도 들린다. 사람들은 활동하기 좋은 이때 나들이를 간다. 그래서 동물원은 이맘때 사람이 가장 많다.

소만_덕유산 케이블카에 안개가 낀 사진
© 이상엽

소만 小滿 5월 21일
무주 덕유산은 걸어 오르는 것이 아니라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나 보다. 겨울 스키장에서 사용하는 리프트는 산에 쉽게 오르려는 사람들을 부지런히 나른다. 사실 나는 케이블카 반대론자다. 대부분의케이블카 건설론자는 장애인의 접근권이나 지역 경제를 이야기하지만, 이는 독점적 자본의 핑계에 불과하다.덕유산 케이블카는 1989년 국립공원 내 건설된 마지막 허가였다. 하지만 지금은 온갖 군데서 케이블카를 건설하려 한다.
그냥 걷자. 일교차가 큰 덕유산 정상은 안개로 가득하다. 등산복은 이슬로 흠뻑 젖는다. 묘한 산행이다. 태양은 황경 60도에 걸리고 풍부한 햇빛을 지상에 내린다. 바야흐로 만물이 생장하는 시기다. 24절기로 볼 때 소만이다. 이 절기에는 붉은색 음식인 팥죽을 먹으며 질병에 걸리기 쉬운 여름을 대비한다. 산에서 내려가면 팥죽 짓는 집을 찾아볼 일이다.

망종인 6월_서울 강동구의 풍납토성에서 강아지와 할머니 산책하는 사진이다.
© 이상엽
서울 강동구 풍납토성의 공원 풍경이다.
© 이상엽

망종 芒種 6월 6일
서울 강동구 풍납토성 안쪽 마을이다. 이 마을은 사실 2,000년 역사를 깔고 앉아 있다. 이곳이 바로 한성백제의 수도였다는 것이 밝혀진 후부터 일체의 재건축이 불허되었다. 그리고 주민들은 언젠가 마을을 떠나야 한다. 그들의 집과 땅은 시가 사들여 한 50년 후에는 완전히 한성백제 유적으로 바뀔 것이다. 지금은 참으로 사람 살기 좋은 한적한 도심의 마을이다.
6월 절기는 망종이다. 황경이 75도로 중천에 가깝고, 이때 농부는 모를 심고 보리를 거둔다. 정말 발등에 오줌 눈다고 할 정도로 농부들이 바쁜 절기다. 오래전 보릿고개라는 얘기처럼 봄철 배고픔은 이 절기를 고비로 사라진다. 뿐만 아니라 들에는 매실처럼 나무에 달린 과일들이 부쩍부쩍 자란다. 도시 사람들이야 농민의 수고를 모르니, 미안하게도 그저 나들이하기 좋은 초여름일 뿐이다.

해가 가장 긴 날인 하지에 홍도 일몰의 모습
© 이상엽
하지에 홍도의 해송의 절경이 펼쳐진다.
© 이상엽
낮이 가장 긴 하지에 홍도의 절벽 사진이다.
© 이상엽

하지 夏至 6월 21일
홍도 해송이 절경이다. 절벽에서 수백년 동안 10미터 가까이 자란 해송은 짙은 녹색을 띤다. 사실 쌀 한 톨 나지 않는 섬이 홍도다. 섬 자체가 산봉우리 형태라 지형이 가파르고 땅은 암석이다. 모든 주민이 어업에 종사하고 그저 부업으로 밭에 밀이나 보리를 심는다.
6월의 첫 번째 절기는 하지다. 하지는 낮이 가장 긴 절기이니, 이는 기후 절기가 아니다. 매년 6월 21일경이 하지다. 정오의 태양 높이도 가장 높고, 일사 시간과 일사량도 가장 많은 날이다. 요즘 기후로 보면 하지는 이제 6월 초순이다. 이는 장마가 시작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홍도는 여러모로 이 나라에서 특별한 섬이다. 1965년,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 170호로 지정됐고, 그 후에는 국내 최초로 쾌속선이 취항해 편도 8시간 걸리던 바다길을 2시간으로 줄였다. 덕분에 1980년대까지 홍도는 관광객으로 넘쳤다. 물론 갈 곳 많은 지금은 찾는 이가 줄었다.

소서에 대청댐 아래 농촌마을에 허수아비가 서있다.
© 이상엽

소서 小暑 7월 7일
대청댐 아래 한 농촌 마을에는 따가운 햇살 아래 벼가 무럭무럭 자란다. 아직은 낱알이 익지도 않았으니 허수아비는 할 일이 없다. 사실 요즘 허수아비는 말 그대로 허수아비다. 참새가 영악한 시절이다. 멀리 대청댐도 보인다. 1975년에 공사를 시작해 1980년에 완공된 대청댐 때문에 거대한 호수 속에 4,000여 세대의 집과 농토가 잠겼다. 댐이 가둔 물로는 이제 송어를 양식한다. 대청댐 아래 찬물을 이용하는 것이다. 한여름 송어회는 참으로 시원하고 달다.
7월 초의 절기는 소서다. 24절기 중 열한 번째에 해당하는 절기로, 하지와 대서 사이에 든다. 양력으로는 7월 7일 무렵이지만 기후의 변화로 6월 27일경을 새로운 소서로 본다. 태양이 황경 105도의 위치에 있을 때이며, ‘작은 더위’라 불린다. 이때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된다.

삼복더위로 알려진 대서에 강원도 장호항 문어의 사진이다.
© 이상엽
삼복더위의 대서에 새벽 강원도 장호항의 사진이다.
© 이상엽

대서 大暑 7월 22일
새벽 강원도 장호항 어시장에 나온 대왕문어다. 문어 숙회는 한여름 별미인데 가격이 정말 만만치가 않다. 특히 제상에 문어를 올리는 풍습이 있는 경북 사람들은 강원도 문어를 공수해 사용했으니 그 비용이 만만찮았을 것이다.
7월 말의 절기는 대서다. 연중 가장 더운 절기다. 보통 이 절기는 15일가량 이어졌는데 기후변화로 이제 대서는 한 달 가까이 진행된다. 소서까지 합치면 근 두 달 가까이 돼서 겨울 한 달이 줄어든 것을 여름이 채우는 형국이다 . 이렇게 여름이 늘어났다는 것은 냉방을 위한 에너지 사용으로 다시 기후변화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악순환이다. 새로 쓰는 절기상, 7월 22일이었던 대서는 소서 뒤에 나타나 8월 20일 입추 때까지 이어진다. 이 안에 초복, 중복, 말복이 모두 들어온다. 이러하니 삼복더위를 피해 음식을 마련해 해변과 산간계곡을 찾아 떠나는 것도 당연하다. 문어 숙회는 정말 여름에 어울리는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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