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카야마현에서 발견한 맛의 세계
일본 간사이 지방에 위치한 와카야마현에서 즐기는 미식 여행.
Four Flavors in Wakayama — 와카야마현에서 발견한 맛의 세계
일본 오사카 간사이 공항에서 차로 약 40분 정도 걸리는 와카야마현은 1년 내내 온화한 기후를 보이며, 겨울에 열대꽃이 필 정도로 따뜻한 지역이다. 오래된 목조 건물이 늘어선 골목에서 작은 바닷마을까지 결코 사라지지 않을 4가지 맛을 탐험했다.
글 박진명
사진 김윤경
취재 협조 와카야마현관광청 kr.visitwakayama.jp
인페인터글로벌 inpainterglobal.com
여행의 시작, 와카야마시


와카야마시는 와카야마현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교통의 중심지다. 와카야마역에서 기차를 타면 현 내의 유아사, 시라 하마, 고야산 등 주요 여행지까지 편하게 이동할 수 있다. 와카야마시 도심으로 들어 서면 현대식 건물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다. 시내 곳곳에는 운하가 흐르고, 주택과 상가가 테트리스처럼 촘촘히 자리한다. 여느 도시와 다를 바 없는 풍경 이다. 거리 위로는 와카야마의 온화한 기후가 만든 파란색 하늘이 유독 잘 보인다. 고도 제한으로 도심 건축물의 높이가 낮은 덕분이다.
도시의 중심에는 1585년에 축조된 와카야마 성이 있다. 이 성은 에도 시대(1603~1868)에 걸출한 장군을 배출하며 군사적 요충지로 여겨졌다. 성 안의 일본식 정원은 세월의 흔적이 무색할 정도로 잘 보존되고 있다. 정원에는 2월 말부터 수선화가 피기 시작해 3월에는 벚꽃, 4월에는 모란꽃, 철쭉꽃이 피고, 6월 중순 쯤엔 수국이 흐드러진다. 가을이 되면 온통 황금빛과 노란색, 빨간색 등으로 물든다고. 정원 안에는 고쇼안(紅松庵)이라는 차실이 자리한다. 1974년에 세운 이 찻집에서는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을 지니고 평정 속에서 차를 즐긴다는 일본의 다도 문화를 접할 수 있다.
라멘 마니아의 성지


와카야마시에 왔다면, 와카야마 라멘을 꼭 맛봐야 한다. 츄카소바(中華そば)라고도 불리는 이 라멘은 돼지고기 육수와 와카야마산 간장이 진하게 어우러지는 국물이 특징이다. 고명으로 올리는 차슈(돼지고기)에도 지방과 속살이 적절히 붙어 있어야 한다고. 겉에 살짝 바른 양념에서 느껴지는 감칠맛이 화룡점정. 국물을 충분히 머금는 면의 두께도 중요 하다. 라멘 가게마다 각기 다른 특징이 있어, 취향에 맞는 라멘을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한 가지 공통점도 있다. 어딜 가나 테이블에 고등어 절임 초밥이 놓여져 있다는 것. 라멘이 나오기 전에 초밥으로 속을 달래라는 의미다.
와카야마 라멘은 이데쇼텐 (井出商店) 덕분에 더 유명해졌다. 1998년 일본 예능 프로그램 〈TV 참피온〉에서는 일본 전 지역에 있는 라멘 장인을 섭외해 요리 경연을 벌였는데, 이때 이데쇼텐의 와카야마 라멘이 2년 연속 (1998년, 1999년) 1위를 차지한 것. 우승을 한 지 20여 년이 훌쩍 지났지만, 이데쇼텐은 여전히 문전성시를 이룰 만큼 그 맛을 지키고 있다. 기다리는 손님을 위해 주차장을 확장했을 뿐, 좌석은 단 14석. 40년 전 처음 가게를 오픈했을 때와 똑같다. 오전 11시, 이데쇼텐의 문을 두드린다. 부엌에는 ‘수프맨(Soupman)’ 티셔츠를 입은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운영자 이데 노리오(井出 紀生) 역시 수프맨 티셔츠를 입고 등장한다.
이데쇼텐 대표 이데 노리오와의 인터뷰


언제부터 운영하기 시작했는가?
1953년 어머니가 리어카에서 라멘을 팔던 것이 이데쇼텐의 시작이다. 내가 일곱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가장이 된 어머니가 라멘을 팔며 형제들을 키웠다. 이데쇼텐에는 우리 가족의 모든 역사가 담겨 있다. 가게 이름의 이데는 어머니의 성에서 가져왔다(쇼텐은 상점이란 뜻이다). 라멘 가게를 물려 받으며 내 이름도 ‘이데’로 바꿨다.
가업을 이어가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서른 살 전까지는 다른 일을 했다. 어릴 땐, 치기 어린 마음에 리어카에서 라멘을 팔던 어머니가 부끄러웠다. 어머니의 리어카를 뒤에서 밀다가 학교 친구들과 마주칠 때면 그렇게 창피하고 싫었다. 철이 들고 나니, 가족을 위해 헌신했던 어머니의 삶을 기억하고 그 정신을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지, 그때부터 요리하는 것이 즐거워졌다.
평일에도 라멘을 먹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오랜 인기의 비결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와카야마 지역의 맛이기 때문이다. 그 맛을 지키기 위해 하던 일을 열심히 할 뿐이다.
라멘 만드는 방식을 알려달라.
육수는 돼지고기가 베이스다. 돼지 뼈와 닭뼈를 센 불에서 8~10시간 정도 푹 끓인 후 간장을 더한다. 얇은 면에 육수를 붓고 차슈, 파 등의 고명을 올리면 완성이다.
하루 일과가 궁금하다.
지난 40년 동안, 휴일인 목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아침 6시에 출근해 장사 준비를 해왔다. 매주 목요일에 일을 쉬는 동생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이데쇼텐도 목요일을 휴일 로 지정했다. 바쁜 일상에서도 가족과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긴 했지만,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라멘에 모든 시간을 다 바쳤기 때문에 가족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이 있다.
아들과 함께 일한다고 들었다. 이데쇼텐의 역사를 이어갈 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 거라 생각한다. 알다시피 우리 가게의 메뉴는 츄카소바 딱 한 가지다. 이 맛을 지키는 것만이 우리가 할 일이고 제일 잘 하는 일이다. 다른 메뉴는 생각해본 적 없다.
마을 전체가 박물관, 유아사


와카야마역에서 특급 열차를 타면 30분 만에 도착하는 유아사. 2006년 ‘중요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로 지정된 유아사초는 일본 간장의 발상지다. 현재 남아 있는 간장 양조장은 10곳이 채 안 되지만, 간장 양조로 번성했던 거리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유아사가 간장의 발상지라 불리는 이유는 간장을 발견한 승려가 정착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13세기, 한 승려가 송나라에서 긴잔지미소(金山寺 味噌) 양조법을 배워 왔다. 긴잔지미소란 콩과 쌀, 보리 등 곡물에 누룩과 소금을 더한 후 박, 가지, 생강, 자소 등 채소를 절여 숙성시킨 발효 식품. 긴잔지미소를 제조하는 과정에서 우러나온 국물을 맛보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간장이었다. 이후 온 마을이 간장 양조를 시작했다. 120년 전에는 양조장이 92곳에 이르렀 다고 전한다.
골목 안에는 오래된 갈색 목조 건물이 끝없이 이어진다. 건물 외벽마다 한 세기 전의 조리 도구, 병원에서 사용했던 의학 도구, 골동품 안경 등을 전시해놓았고 격자창이나 사방등이 더해져 옛 정취를 북돋는다. 마치 살아 있는 간장 박물관처럼 말이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신선한 수제 간장의 비밀


유아사의 거리에서 한 세기 전 간장을 이고 지고 바쁘게 걸어다녔을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한다. 아직까지 마을에 남은 이들은 오래전부터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다. 거리를 걷다 6대째 이 자리를 지키는 오타큐스케긴세(太田久助吟製)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원래 간장 양조장이었지만, 지금은 긴잔지미소를 만드는 곳. 도쿄와 같은 대도시의 이자카야에서는 긴잔지 미소를 고급 메뉴에 활용한다. 통밀 크래커 위에 크림 치즈와 함께 얹어 먹는 안주로 등장하곤 하는데, 고소하면서도 새콤한 짠 맛이 특징이다. 오타큐스케 긴세를 지키는 주인에게 주변의 양조장이 하나둘 사라지는 걸 보는 심정은 어떤지 물으니 “후계자를 찾는 것도 어렵고, 기술이 점점 발달하니 생산량을 따라 가기가 힘들더라.”고 대답한다. 그녀는 팬데믹 때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을 대신해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다행히도 이곳은 사위가 역사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한다.
마을에는 사위가 가업을 잇는 양조장이 또 있다. 현재 유아사에서 유일하게 180여 년 전 선조의 방식을 따라 수제 간장을 생산하는 가도초(角長)다. 높이가 낮은 문으로 머리를 살짝 숙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짙은 간장의 풍미가 느껴진다. 대부분의 간장이 대량 생산되는 오늘날에도 가도초는 첨가물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수제 간장 양조를 고수하고 있다.
“간장 만드는 사람입니다.” 가도초의 6대 운영자인 가노 마코토(加納誠)가 서툰 한국어로 본인을 소개한다. 아들, 딸과 함께 양조장을 운영하는데 가노는 패키지를 접고 손님을 응대하는 등 주로 매장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자신보다 훌쩍 커버린 자녀들에게 잔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양조장 안에서만큼은 누구보다 진지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을 반짝 인다. 에도 시대부터 사용했다는 창고 안으로 들어서니 커다란 나무통 안에 4년 이상 숙성 중인 까만 간장이 가득 담겨 있다. 온도와 습도의 미묘한 변화가 간장의 맛을 결정하기 때문에 긴 막대기로 나무통 안 내용물을 자주 섞어 맛을 유지한다고. 이런 제조 방식이야말로 기계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가도초만의 재산일 테다.
가도초 대표 가노 마코토와의 인터뷰


언제부터 운영하기 시작했나?
1841년에 창업해 현재 6대째 운영 중이다. 5대인 아버님이 은퇴했고, 사위인 내가 회사를 물려받아 경영하고 있다. 아들 역시 가업을 잇기 위해 함께 일하고 있다.
가업을 이어가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나는 오사카 출신이고 아내가 이곳에서 나고 자랐다. 45년 전 결혼할 당시, 오사카에 간장을 파는 곳은 많아도 양조장은 없었기 때문에 처갓집에서 하는 일이 흥미로웠다. 180여 년 전의 양조 방식을 그대로를 고수한다는 것도 특별했다. 처갓집에 드나 들며, 가족의 전통을 잇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통 방식으로 간장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달라.
삶은 대두와 볶은 밀을 1:1의 비율로 섞는다. 누룩과 소금을 추가해 양조 공정을 거친 후 혼합물이 완전히 발효되면 용기에 담아 천으로 밀봉하고 압착한다. 가도초 간장의 비밀은 180년 된 양조장 건물에 붙어 있는 미생물이다. 나뭇결 곳곳에 붙은 오래된 효모균이 좋은 간장을 만드는 지표다.
옛날 방식을 고수하는 이유가 있다면?
유아사가 일본 간장의 발상지이기 때문이다. 그 사명감으로 지금까지 간장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글루텐프리 간장과 간장 파우더 등 시대가 요구하는 제품도 만들고 있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궁금하다.
아들이다. 우리는 간장으로 시작해 간장으로 끝나야 한다는 확고한 기업 철학을 갖고 있다. 이 철학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시대에 맞는 다양한 변화를 시도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게 바로 간장 양조장과 이 지역이 지속 가능하게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이라 믿는다.
태평양의 경이로운 일몰, 시라하마초


시라하마는 바닷가 온천과 해안 풍경 그리고 일몰로 유명한 도시다. 일몰을 보고 싶다면, 바위섬 엔게츠도(円月島) 으로 향할 것. 바위 중간에 해식 동굴이 동그랗게 뚫려 있어 ‘엔게츠(円月, 보름달)’라 불리는데, 동굴 사이로 해가 떨어지는 절경을 포착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드는 곳이다. 시라하마를 둘러싼 바다의 거센 파도는 바위섬을 비롯해 마치 천 장의 다다미가 깔려있는 것 같아 센조지키(千畳敷)라 불리는 암반과 썰물이 절벽에 부딪혀 형성된 주상절리 암벽 산단베키(三段壁)를 만들었다. 와카야마역에서 시라하마까지는 JR구로시오 특급 열차를 타고 1시간 30분이 걸린다.
벚꽃 이전에 매화가 있었다


시라하마에서 차로 30분 정도 북쪽으로 올라가면, 타나베시(田辺市)라는 작은 도시가 나온다. 와카야마현은 전국 최대의 매실 생산지인데, 그중에서도 타나베는 매실 생산량이 가장 많은 지역이다. 타나베의 매화는 이르면 1월 말부터 싹이 트고 마을 사람들은 그때부터 꽃놀이를 시작한다. 자칫 벚꽃과 헷갈릴 수도 있지만 잎 모양으로 구분할 수 있다. 벚꽃잎은 하트 모양이고 매화잎은 둥근 편.
흐드러지게 핀 매실나무를 보고 싶다면, 미나베바이린(南部梅林)으로 향해보자. 약 8만 그루의 매실나무가 완만한 산의 사면 전체를 빽빽하게 채운 매화 산지다. 이곳에서 매년 매화 축제를 개최하는데, 점차 꽃이 피는 시기가 빨라져 올해는 1월 28일부터 3월 5일까지 열렸다.
이 지역 사람들은 400년 전부터 매실 농사를 지어왔다. 당시 산에 나무를 심으면 세금을 면제해주는 정책이 생겼고, 매실은 와카야마의 환경에서 기르기 적합했다. 비탈진 언덕에 심은 매실나무는 햇빛을 고루 받기 때문에 잘 자라고, 근처 바다에서 불어온 소금기 있는 바람은 열매를 더욱 맛있게 만든다. 타나베에서 나고 자란 많은 이들은 선조들의 지혜와 노력으로 일군 매실 관련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2015년에는 마을 전체가 국제연합 식량농업기구의 세계농업유산(GIAHS)에 등재됐다.
하마다(濱田)는 타나베에서 유일하게 재배부터 생산·가공· 제품 개발까지 아우르는 매실 전문 기업이다. 하마다의 총괄 매니저 이노세 요스케(井瀬 陽介)도 마찬가지로 이곳 출신. 이노세와 함께 하마다 소유의 매실밭을 둘러보기 위해 길을 나선다. 회사 대표가 오전 농사일을 끝내고 낮잠 장소로 애용하는 자동차를 지나고, 빈초탄(備長炭, 일본의 전통 숯)의 원료인 우바메가시(ウバメガシ, 너도밤나뭇과의 일종) 숲도 지난다. 그렇게 30분 정도 굽이친 산을 오르니, 균형이 잘 잡힌 매실 산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중 하마다 과수원의 면적은 24헥타르 정도. 일반 야구장 18개를 합친 규모라고 한다. 이렇게 큰 매실 산지를 수세기에 걸쳐 어떻게 관리해왔을까.
하마다 총괄 매니저 이노세 요스케와의 인터뷰


400년 전부터 여느 농장처럼 재배만 하다 본격적으로 가공 사업까지 뛰어든 이유는 무엇인가?
40년 전, 매실에 소금이나 깻잎 등을 첨가한 매실 가공 식품이 유행했다. 당시 수요가 늘면서 회사로 발전했다. 현재 하마다에서는 매실주부터 매실 절임, 매실 토마토 파스타 소스, 매실잼 등 다양한 제품군을 갖추고 있다.
이 마을에서 매실이 유독 잘 자라는 이유가 무엇인가?
바다가 가까운 산비탈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바메가시 숲 덕이 크다고 생각한다. 와카야마 지역에서는 빈초탄의 원료인 우바메가시가 잘 자란다. 산 전체에 매실나무만 심지 않는 것이 예부터 전해 내려온 우리 마을의 원칙이다. 우바메가시나 떡갈나무 등 다양한 종이 함께 있어야 산사태나 산의 황폐화를 막고, 꿀벌에게 피난처를 제공할 수 있다. 자연 생태계를 무너뜨리지 않았기에 지속 가능한 매실 농사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마다 매실이 특별한 이유는?
매실나무는 잎과 가지가 무성하게 잘 자란다. 수시로 가지를 쳐야 하는데, 자르는 방법에 따라 매실의 품질이 결정된다. 매실은 따는 게 아니라 저절로 떨어져야 비로소 알맞게 익은 것이다. 언제쯤 떨어지는지 정확한 날짜를 알지 못하니, 열매를 맺으면 매일매일 확인해야 한다. 하마다는 그날 떨어진 매실을 바로 수거해 제품화하기 때문에 신선하고 맛이 좋을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매실나무를 돌보며 체감하는 기후 변화도 있을 것 같다.
매년 수확량이 확실히 다르다. 예전엔 수확량이 안정적 이었다면, 지금은 편차가 심하다. 높아진 기온과 잦은 폭우가 가장 심각한 문제다. 기후 변화에 대응하며 매실의 품질을 유지하는 게 우리가 할 일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탄산을 넣어 매실주를 담그거나 와카야마 지역에서 재배한 귤, 레몬, 유자 등을 넣은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선조들의 지혜를 잘 지켜가며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일본인의 영적인 고향, 구마노


풍부한 자연 유산을 품고 있는 구마노. 예로부터 일본인은 이곳을 자연과 인간의 정신 세계가 교차하는 곳으로 여겨왔다. 구마노의 성지 중 구마노 혼구타이샤(熊野本宮大社), 구마노 하야타마타이샤(熊野速玉大社), 구마노 나치타이샤(熊野那智大社) 3곳을 구마노산잔(熊野三山)이라고 한다. 와카야마역부터 각 성지까지는 기차와 버스로 갈 수 있다. 혼구타이샤까지는 1시간 15분 동안 기차를 타고 가서 기이타나베역에서 내린 후 버스로 2시간을 더 이동해야 한다. 하야타마타 이샤까지는 기차로 3시간 20분 걸리고, 나치타이샤까지 가기 위해서는 기차로 3시간 걸리는 기이카쓰우라역에 내려 버스로 갈아탄 후 30분 정도 더 가야 한다.
이 세 신사로 가는 순례길을 일컬어 구마노고도(熊野古道)라고 하는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부분은 300킬로미터 이상에 이른다. 구마노고도를 걷다 보면, 다리가 3개인 까마귀가 새겨진 휘장을 자주 발견한다. 이 길 위에서 만나는 까마귀는 반가워해도 좋다. 구마노고도에서는 야타가라쓰(八咫烏)라 부르는 이 까마귀를 참배의 안내자로 여기기 때문이다. 사실 일본에서 야타가라쓰는 승리를 상징하는 동물이기도 하다(일본 축구 국가대표 유니폼에도 야타가라쓰가 그려져 있다).
세 곳의 신사 중 구마노 나치타이샤는 나치산(那智山) 해발 500미터에 자리하며, 별궁에 있는 히로 신사(飛瀧神社)에서는 일본 최대 낙차 폭포 나치노오타키(那智の大滝)를 자연신으로 모신다. 악의 기운을 쫓아 내기 위해 주황색을 칠한 탑과 133미터 높이의 폭포가 어우러진 풍경으로 유명하다.
참치로 지역과 사람을 잇는 바닷마을


구마노 나치타이샤에서 남단으로 내려가면 아담한 항구 마을 나치가츠우라초(那智勝浦町)에 당도한다. 항구 한쪽에 마련된 야외 족욕탕과 작은 상점이 어우러진 소박한 풍경에 마음이 푸근해진다. 이 마을에는 ‘동굴 온천’으로 잘 알려진 호텔 우라시마(ホテル浦島)가 있다. 태평양에서 시작된 파도에 침식되어 생긴 동굴에서 온천욕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마을이 유명한 또 다른 이유는 큰 규모의 참치 어항 때문. 매일 아침 7시면 가츠우라항(勝浦漁港)에서 열리는 참치 경매의 풍경을 볼 수 있다. 항구 바로 옆 니기와이 시장(にぎわい市場)에서는 생참치부터 가공 식품까지 지역에서 잡아 올린 참치의 모든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시장 입구에 들어서자, 이 마을에서 낚은 가장 큰 참치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대형 참치 모형이 시선을 압도한다.
시장 가장 안쪽에는 야마사 와키구치수산(ヤマサ𦚰口水産, maguro-yamasa.com)이 있다. 올해로 130주년을 맞이한 야마사 와키구치수산은 일본 경제산업성에서 건강한 물건 만들기 300대 중소기업으로 선정된 참치 가공 회사다. 참치는 크기에 따라 참치살의 끈기와 경도가 다르기 때문에 자르는 방법도 달라진다. 여기서 상품 가치가 결정되는 것. 그래서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하다. 야마사 와키구치수산은 가츠우라항에서 잡은 참치를 일본 전역에서 맛있게 즐길 수 있도록 좋은 참치를 판별하고 참치 포장·가공 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실제로 이 회사에서는 참치의 특징을 숙지한 장인이 한 점 한 점 수작업으로 잘라낸 것으로 모든 제품을 만든다.
참치에 모든 생을 바쳐온 야마사 와키구치수산 대표 와키구치 코타로(𦚰口光太郎)는 여전히 직접 참치를 해체하며 상품 개발에 애쓰고 있다. 30년 전 와키구치가 입사했을 때만 해도 직원은 사촌 고모를 포함해 단 6명뿐이었다. 지금은 50여 명을 거느리는 어엿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가 “도쿄 어느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우리 지역의 참치를 고가에 판매하고 있어요.”라고 말하며 참치를 접시 위에 놓은 뒤 뒤집는다. 품질 좋은 참치는 떡처럼 딱 달라 붙어 있다. “우리는 이 참치를 ‘모찌마구로(もちマグロ)’라고 부릅니다.” 접시를 들고 있는 손 끝에서 부터 지역과 회사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야마사 와키구치수산 대표 와키구치 코타로와의 인터뷰


참치 사업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아주 오래 전부터 이곳 사람들은 생선잡이와 판매로 생계를 유지하고 살았다. 우리 가족도 130년 전부터 이 마을에서 대대로 수산업에 종사해왔다. 60년 전 아버지가 본격적으로 시작한 참치 전문 회사 야마사 와키구치수산을 내가 잇고 있다.
가쓰우라항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참치를 잡는다고 들었다.
보통 참치가 알을 낳거나 먹잇감을 찾기 위해 이동하는 길목에 거대한 그물을 쳐 참치 떼를 한 번에 잡는다. 참치를 포함한 붉은 살 생선은 그물에 걸리면 호흡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금방 죽는다. 또,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새끼 참치가 잡히는 경우도 많다. 오래 전부터 가츠우라항에서는 상품 가치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그물로 올린 참치를 취급하지 않았다. 대신 연승어법으로 참치를 잡았다.
긴 낚시줄에 일정한 간격으로 여러 개의 낚시바늘을 달아 수산물을 한꺼번에 낚는 방식이다. 이 방식으로 잡은 참치는 그물 위에서 호흡하지 못해 피가 몰려 죽은 참치보다 훨씬 상품 가치가 높고, 새끼 참치를 방생할 수도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 참치의 생명을 소중히 다루고 존중하는 가츠우라항만의 전통 방식이다.
기후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마을에 생긴 변화는 무엇인가?
원래 참치를 잡으려면 항구에서 배를 타고 300킬로미터 정도 나가야 했다. 수온이 높아지면서 참치를 낚는 포인트가 북쪽 훗카이도 지방 쪽으로 점점 올라가고 있다. 참치 어획량도 30년 전과 비교하면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이러한 변화에 따른 기업의 대처 방안이 있다면?
생참치가 아니면 취급하지 않던 시절도 옛날 이야기다.(웃음) 냉동 참치를 생참치처럼 신선하게 먹을 수 있는 특수 냉동 기술을 개발했다. 세포막이 부서지지 않게 냉동하는 기술로, 언제 어디서나 신선한 참치를 먹을 수 있다. 이 지역에서 잡은 최고급 참치는 대부분 도쿄나 오사카 등 대도시로 간다. 정작 현지에서 좋은 참치를 맛볼 수 없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항구에 있는 니기와이 시장에 판매점을 오픈했으니 가장 신선한 참치를 현지에서 경험하길 바란다.
다음 세대를 이을 아들에게 강조하는 기업 철학은 무엇인가?
일본에서 가장 참치를 소중하게 대하는 회사가 되면 좋겠다. 평생 참치와 사람을 가장 소중히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건 창업주인 아버지 때부터 내려온 기업 정신이다. 참치를 소중히 대하면 회사와 이 지역은 지속 가능하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지역에서 꼭 경험했으면 하는 것은?
물맛이 좋기로 유명하고 물이 어우러진 풍경도 아름다운 지역이다. 온천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며, 이런 곳에서 자란 식자재가 얼마나 신선하고 좋은지 몸소 체험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