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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사원, 마을, 정원 – 아세안을 새로운 각도로 여행하는 법

아세안 건축 문화 여행. 말레이시아 믈라카를 거닐며 만난 정교한 건축물.

이기선
2022.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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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tecture and Culture Tour in 4 ASEAN Countries — 집, 사원, 마을, 정원 – 아세안을 새로운 각도로 여행하는 법

건축은 현지인의 살아가는 방식과 마음을 담는다. 말레이시아부터 태국까지, 미처 알지 못한 문화 예술과 삶의 방식을 건축으로 재발견해보자. 아세안 4개국 건축과 문화 여행.

글 이기선
취재 협조 한-아세안 센터

말레이시아 믈라카 Melaka, Malaysia

© 한-아세안센터

도시는 서로 다른 시대와 공간의 층위로 이루어진다. 믈라카에는 그 층위가 특히나 얽혀 있다. 지난 수백 년, 이방인이 드나들며 흔적에 흔적을 덧붙여왔기 때문이다. 믈라카의 중심인 더치 스퀘어(Dutch Square)에는 헬로 키티나 겨울왕국 캐릭터로 치장한 인력거가 유행가를 틀고 달린다. 즐거이 손 흔드는 리버 크루즈(River Cruise)의 승객은 자기도 모르게 믈라카의 지난날을 재현하고 있다. 인도양과 태평양을 잇는 좁은 뱃길인 말라카 해협을 지나, 세계 각지에서 온 배들이 말라카강까지 흘러 들어온 역사 말이다. 정향, 육구두, 비단을 실은 배 대신, 이제 범선 형태의 해양 박물관이 말라카 강변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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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치 스퀘어는 구시가 도보 여행의 출발점이다. 믈라카의 랜드마크이자 네덜란드 시대를 상징하는 스타다이스(The Stadthuys)와 크라이스트 처치(Christ Church)가 이곳에 있다. 10분쯤 걸으면, 앞바다를 굽어보는 세인트 폴 처치(St. Paul Church)와 아파모사(A’Famosa Fort)를 만난다. 16세기 포르투갈인이 처음 지은,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 사원인 첸훈텡 사원(Cheng Hoon Teng Temple), 가장 오래된 힌두교 사원인 스리 포야타 무어티 사원(Sri Poyatha Moorthi Temple) 그리고 캄풍 클링 모스크(Kampung Kling Mosque)는 ‘하모니 스트리트’라 이름 붙은 거리에 나란히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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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옆골목은 한때 백만장자의 거리로 불렸다. 부유한 페라나칸들이 지은 가옥이 지금도 여럿 남아 있다. 페라나칸은 현지에서 태어났다는 뜻으로, 이곳에 정착한 외국인이 말레이인과 결혼해 낳은 후손에서 시작해 음식, 건축 등 그들의 문화에까지 두루 사용한다.

© 한-아세안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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믈라카 하우스(Malaqa House)는 페라나칸 가옥을 개조한 갤러리다. “믈라카는 혼합 그 자체예요.” 이곳을 운영하는 그레이스 웡(Grace Wong)이 말한다. 믈라카에서 나고 자란 그녀는 자신이 말라칸(Malaccan)이자 중국인이기도 하다고 덧붙인다. 각자의 전통을 간직하며 공존하는 일, 두 고향을 가지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 묻자 웡은 잘 모르겠다며 미소 짓는다. 과거 네덜란드 법령에 따라 좁은 폭으로 지은 가옥 내부는 중정 두 개를 품고 길게 이어진다. 유럽식 건축을 프레임 삼아, 중국과 말레이풍 가구와 오브제가 어우러진다. 햇살 내리쬐는 중정의 풀가에서 손님들이 중국식 차를 마신다. 혼합이 빚어낸 아름다움의 일부로서, 자연스럽게.

🎒Side Trip 말레이시아의 숨은 여행지 이포(Ipoh)에서 건축 여행을 이어가자. 쇠락한 옛 광산 도시는 다시금 부활을 꾀하고 있다. 구시가는 20세기 초 유럽식 건물과 숍하우스를 간직하고, 리사이클 공간도 속속 들어섰다. 믈라카에서 차로 5시간 소요.

인천국제공항에서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까지 대한항공, 에어아시아 등이 직항편을 운항한다. 쿠알라룸푸르에서 믈라카까지 차로 2시간가량 걸린다.

아세안 4개국 건축 여행 - 말레이시아 믈라카

필리핀 세부 Cebu, Philippines

© 한-아세안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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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젤란의 십자가(Magellan’s Cross)의 목조 십자가 안에는 1521년 마젤란이 세부에 세운 십자가 잔해가 들어 있다고 전한다. 진위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이른 아침 빛이 내리쬐는 십자가 아래에서 초를 파는 행상이 우리를 위해 기도를 읊으며 시누그(Sinug)를 출 때,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앞뒤로 스텝을 반복하는 시누그의 춤 동작은 오가는 물결을 본떴다. 하늘에 기도하는 이 춤의 기원은 고대 토속 신앙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가톨릭과 만나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시누그 춤에서 보듯, 필리핀에서 가장 오래된 이 도시는 외부 요인을 받아들이며 유연하게 자신만의 문화를 빚어왔다. 한데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필리핀 문화의 밑바탕에는 바다가 있다. 필리핀에서 가장 작은 행정 단위인 바랑가이(barangay)는 최초의 정착민이 타고 온 배, 발랑가이(balangay)에서 유래했다. 함께 먼 길을 항해해 온 이들이 섬에 정착해 마을을 이룬 것. 더욱이 지진, 태풍, 홍수 등 자연 재해가 잦고, 문화가 교차하는 길목에 있던 섬나라에서는 사회적 유대가 필수적이었을 테다.

세부의 많은 랜드마크가 가톨릭 건축인 이유는 그 때문이다. 사람들이 모이는 장 역할을 하는 것. 노점, 호텔 로비 등 세부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아기 예수상 원본은 필리핀의 가장 오래된 가톨릭 성당인 산토 니뇨 성당(Basilica Minore del Santo Nino)에 있다. 세부 메트로폴리탄 성당(Cebu Metropolitan Cathedral)도 인근에 자리한다. 예측할 수 없는 자연 재해에 적응하며 살아온 삶의 방식이 건축에도 담겨 있다. 지진에 대비해 성당 벽을 두껍고 낮게 설계하고 내구성 높은 코랄 스톤을 사용하는 식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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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에서 가장 오래된 요새 산 페드로 요새(Fort San Pedro)의 벽에는 단단한 코랄 스톤을 사용했다. 카사 고로르도(Casa Gorordo)에도 코랄 스톤을 사용했고, 유리보다 내구성 뛰어난 카피즈 조개껍데기로 창유리를 만들었다. 이곳은 필리핀, 스페인, 중국 양식이 어우러진 세부 고유의 대저택 건축 양식 발라이 나 티사(balay nga tisa)의 좋은 사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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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에서 차로 10분 달리면, 세부에서 가장 큰 쇼핑몰 SM 시사이드 시티 세부(SM Seaside City Cebu) 부지에 자리한 산 페드로 칼룽소드 예배당(Chapel of San Pedro Calungsod)을 만난다. 필리핀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건축 디자이너 카를로스 아르네즈(Carlos Arnaiz)가 설계했는데, 코랄 스톤의 일종인 막탄 스톤(Mactan stone)처럼 보이게끔 가공한 콘크리트를 사용했다. 100개 벽이 이루는 외관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인다. 7,600여 개 섬, 100여 개 인종 집단, 150여 개 언어로 이루어진 이 나라처럼 변화무쌍하다.

🎒Side Trip 필리핀의 설탕 수도, 바콜로드(Bacolod)는 더 루윈스(The Ruins), 발라이 니 타나 디캉(Balay ni Tana Dicang)처럼 아름다운 대저택 건축물을 간직하고 있다. 가면 축제인 마스카라 축제(Masskara Festival) 기간에 맞춰가면 좋다. 세부에서 국내선 항공편으로 1시간 거리.

인천국제공항에서 막탄 세부 국제공항까지 대한항공, 세부 퍼시픽 등이 직항편을 운항한다.

아세안 4개국 건축 문화 여행 -필리핀 세부

싱가포르 Singapore

© 한-아세안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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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의 루프톱 인피니티 풀, 세계 최대의 유리 온실, 세계 최대의 실내 폭포가 모인 도시는? 지난 2세기 동안 싱가포르는 땅 4분의 1을 새로 간척하고 대담한 도시 계획을 실행했다. 싱가포르에서 진정 놀라운 점은 어디든 녹음이 있다는 사실이다. 스카이라인을 새로 창조해가는 야심과 계획성을 녹지 사업에도 공평히 쏟은 덕분이다. ‘정원의 도시’에서 ‘정원 속 도시’를 거쳐 최근 ‘자연 속 도시’로, 지난 세기 이래 캐치프레이즈도 변화했다. 가든스 바이 더 베이(Gardens by the Bay)는 '정원 속 도시'를 대표하는 정원이다. 20~50미터 높이의 슈퍼 트리가 햇빛과 빗물을 흡수해 에너지를 생성하고, 정원 내 다른 시설과 일종의 생태계를 이룬다.

© 한-아세안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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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이 도시 국가에는 어디에든 녹음이 존재한다. 싱가포르 보태닉 가든스(Botanic Gardens), 포트 캐닝 파크(Fort Canning Park)처럼 이름난 정원뿐이 아니다. 주상 복합 건물 마리나 원(Marina One)의 중앙 정원은 마이크로 기후를 자체 생성하며 350여 종 식물이 우거져 자란다. 난양기술대학교의 실험적인 학습 센터 더 하이브(The Hive)에는 8층 높이로 뚫린 중앙 정원이 자리해 각 층 테라스마다 식물이 잎을 늘어뜨리고 있다. 영국의 토머스 헤더윅(Thomas Heatherwick)이 설계한 이 건물은 여러 학과 학생과 교수가 자유롭게 교류하는 공간이자 디지털화된 학습 장소로 기능하며 지속 가능하기까지 하다. 싱가포르 최초의 공공 주거 단지인 티옹 바루 단지(Tiong Bahru Estate)는 또 어떤가? 20세기 중반 설계한 아르데코풍 공공 주택 사이로 난 산책로에도, 티옹 바루 마켓(Tiong Bahru Market) 안마당에도 열대 수목이 자란다. 방 10개짜리 숙소에서 시작해 싱가포르의 유산이 된 래플즈 호텔(Raffles Hotel) 역시 최근 전면 개조를 거쳐 울창한 열대풍 안마당을 가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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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슬링, 멀라이언, 카야 토스트를 막론하고 싱가포르 대부분의 유산은 웬만하면 두 세기를 넘지 않는다. 다만, 이국 선박이 작은 섬에 막 닻을 내리던 14세기부터 어떤 유산은 지금껏 이어진다. 부기스(Bugis), 차이나타운, 캄퐁 글램(Kampong Gelam) 같은 지명으로도 이어지는 유산. 이를 테면 술탄 모스크의 황금 지붕과 불치사, 알록달록한 숍하우스 사이를 2층 버스로 넘나들 때, 혹은 호커 센터에서 모르는 이와 한 테이블에서 식사할 때면 마음에 스미는 공존의 정신 같은 것 말이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싱가포르 창이 국제공항까지 아시아나항공 등이 직항편을 운항한다.

아세안 4개국 건축 문화 여행 - 싱가포르

태국 치앙마이 Chiang Mai, Thai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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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결코 한눈에 담기지 않아요. 걸으면서 하나하나 발견하게 되죠.” 왓 파랏(Wat Pha Lat)을 추천하며 오영욱 건축가가 한 말이다. 사원이 도이 수텝 산자락을 부지로 삼은 덕분이다. 냇가에는 허물어진 대불전이, 안쪽에는 이끼와 하나된 쩨디가 있다. 전설에 따르면 란나 왕이 도이 수텝산을 오를 때 타고 온 흰 코끼리가 이 자리에 한 번 쉬어 갔다고 한다. 이후 수백 년간 수행자만이 이 비밀스러운 수도원을 오갔다.

© 한-아세안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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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는 태국에서 불교 사원이 가장 많은 도시다. 치앙마이를 수도 삼아 500년간 태국 북부를 지배한 란나(Lanna) 왕국이 독실한 불교 국가였기 때문. 란나 사원, 이른바 ‘왓(wat)’의 건축적 특징은 지붕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가파른 층 여러 개로 이뤄지고, 끝단을 금속으로 장식하기도 한다. 성벽 일부와 해자로 둘러싸인 구시가를 걷다 보면 다양한 왓을 마주친다. 왓 쩨디루앙(Wat Chedi Luang Varavihara)은 치앙마이에서 가장 큰 쩨디로 유명하고, 왓 프라씽(Wat Phra Singh)에는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불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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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나의 유산이 아니더라도 치앙마이에 머물다 보면 마음의 안식을 느끼게 될 것이다. 교외 요가 스테이에서 명상에 잠길 때에도, 아난타라 치앙마이(Anantara Chiang Mai)의 유럽 양식 공관 건물을 개조한 바에서 칵테일을 마실 때에도. 꾸밈없고 소박한 건물 탓일 수도, 치앙마이를 감싼 산과 들이 주는 효과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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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치앙마이 사람들이 유산을 아끼고, 응용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예술가 마을 반캉왓(Baan Kang Wat)은 지난 세기의 교외 목조 가옥 양식을 활용해 치앙마이다운 목가적 미학을 만들어냈다. 지역 예술과 공예, 문화를 소개하는 구시가 캄 빌리지(Kalm Village)는 현지 건축가 가족이 설계해 운영하는 곳. 이 건물이 초콜릿 박스와 같다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아차리야르 로자나피롬(Achariyar Rojanapirom)의 말은 사실이다. 손수 구워 낸 진회색 벽돌을 전통 직조 패턴으로 쌓은 벽과 설계자, 배관공 등 건축에 기여한 이들의 이름을 적은 벽 곳곳의 숨은 글씨 등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진가를 발견하게 된다. 지역의 재료를 활용했거나 현지 장인과 협업한 작품, 전통 문화를 참조한 콘텐츠만 소개하는 소신도 이에 포함된다.

🎒Side Trip 란나의 첫 수도였던 치앙라이(Chiang Rai). 이곳의 명물은 왓 롱쿤(Wat Rong Khun)과 반담 박물관(Baan Dam Museum), 이름하여 화이트 템플과 블랙 하우스다. 란나를 비롯한 전통 건축 양식을 창의적으로 재해석했다. 치앙마이에서 차로 3~4시간 소요.

인천국제공항에서 치앙마이 국제공항까지 대한항공, 제주항공 등이 직항편을 운항한다.

아세안 4개국 건축 문화 여행 - 태국 치앙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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