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로키산맥으로의 여행
Driving into the Canadian Rockies — 캐나다 로키산맥으로의 여행
캐나다 앨버타주의 재스퍼부터 카나나스키스까지, 지구 상에서 가장 광활한 산맥 중 한 곳인 로키산맥의 작은 일부 속으로 서서히 들어간다. 하늘로 치솟은 봉우리와 땅을 뒤덮은 빙하, 야생동물과 침엽수 그리고 투명한 호수가 시선을 어루만지며 스쳐 지나간다. 로키의 경이로운 풍경은 쓸쓸함과 온화함 사이에서 잠시 머물 곳을 만들어준다.
글 · 사진 허태우
아이스필즈 파크웨이
Icefields Parkway
흰색의 대형 쉐보레 밴을 타고 재스퍼를 출발해 93번 고속도로를 달린다. 여기는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악 도로로 꼽히는 1 아이스필즈 파크웨이다. 이 길은 2 대륙 분수령(continental divide)을 따라 로키산맥의 웅장하고 거친 산봉우리를 스치듯 지나 쭉 이어진다. 1800년대부터 원주민과 모피 상인이 거래를 트면서 이 루트의 원형을 개척했고, 이후 고속도로는 1960년대 초에 완성됐다.
겨울로 접어드는 로키산맥은 목도리처럼 두른 황금색 단풍의 물결을 발치로 내려놓고 머리 위 꼭지점부터 순백의 눈을 뒤집어 쓰려 한다. 가끔은 무안한지 낮은 구름으로 등성이를 가릴 때도 있다. 간간이 솟은 침엽수는 음영을 그려내며 겨울을 대비한다. 한겨울이 되면 이 도로는 얼음장을 방불케 한다. 한겨울 아이스필즈 파크웨이 주변의 기온은 영하 50도까지 떨어지니 말이다. 그 직전까지 수많은 여행자가 최후의 풍경을 목도하려는 듯 아이스필즈 파크웨이를 찾아올 게 분명하다. 날렵한 소형 전기차부터 기우뚱거리는 대형 캠핑카까지, 온갖 차들이 꼬리를 물고 로키의 드라마틱한 산세와 불쑥 나타난 야생동물이 어우러진 풍경을 카메라에 담느라 수시로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말이다. 물론 어떤 이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돌변하는 날씨에 불평하면서 입을 비죽 내밀겠지만.
재스퍼 인근 피라미드 레이크(Pyramid Lake)의 아침은 스산하고 흐렸다. 수면 위로 낮게 깔린 안개는 서스펜스 영화의 도입부처럼 음습한 분위기를 풍겼다. 하지만 햇살이 쨍쨍한 날에는 피라미드를 닮았다는 넓적한 암봉인 피라미드산이 호수에 그림같이 반사되고, 반짝이는 피라미드섬에서는 야외 결혼식이 열린다, 라고 가이드 3 A. V. 웨이크필드(A. V. Wakefield)가 알려준다. 달리 말하면 그곳이 재스퍼에 온 여행객은 한 번쯤 꼭 들르는 유명 출사지라는 뜻. 호수 변을 30분 정도 산책하는 동안 200밀리리터짜리 망원 줌렌즈를 조작하는 수십 명의 여행객을 보았으니 그 말은 사실일 것이다. 다만 그들도 어느 흐린 날 병풍처럼 시무룩하게 서 있는 피라미드산과 그 앞의 회색빛 호수에 다소 실망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로키산맥에서는 태양 아래 빛나는 빙하호수가 언제든지 떠오를 테니까.
1 93번 고속도로의 일부 구간으로, 총 길이는 약 230km에 이른다.
2 로키산맥을 중심으로 동쪽으로 흘러 캐나다의 허드슨만이나 미국의 미시시피강으로 들어가는 수계와 서쪽으로 흘러 태평양으로 들어가는 수계가 형성된다. 이 분수령은 캐나다에서 계속 남쪽으로 뻗어 나가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에 이른다.
3 A.V. 웨이크필드는 로키산맥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사진가이자 비쥬얼 스토리텔러다. (인스타그램 @viktorianorth)
멀린 레이크
Malign Lake
재스퍼에서 차로 약 1시간 떨어진 멀린 레이크는 마치 거대한 피오르를 연상시킨다. 좌우로 산줄기가 펼쳐진 22킬로미터 길이의 호수 위로 크루즈를 타고 떠다닐 때면 정말 그렇다. 이곳에서 바다까지 약 80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멀린 레이크는 로키산맥의 여행 산업 태동기에 톡톡한 역할을 했다. 이곳의 아름다움을 무시하지 못했던 재스퍼 출신의 프레드 브루스터(Fred Brewster)가 이미 1930년대 호수 북쪽에 게스트하우스를 지어 여행객을 맞이한 것이다. 당시 재스퍼는 철도 노선이 연결된 덕분에 캐나다 서부 개척과 로키산맥 여행의 중심지였다. 재스퍼에서 반나절간 말을 타고 터벅터벅 넘어온 여행객은 멀린 레이크의 비경과 함께 송어 낚시와 보트 타기를 즐겼다.
오늘날 호수 북쪽 끝 선착장에서 출발하는 4 크루즈는 승객들을 스피릿 아일랜드(Spirit Island) 앞에 내려준다. 이 섬은 오직 배를 타고 접근할 수 있는데, 가이드와 홍보 자료의 설명에 따르면 로키산맥에서 가장 많이 사진에 찍히는 장소다. 크루즈에서 내리는 순간 그 이유를 알아차리게 된다. 에메랄드빛 호수 위에 떠 있는 아담한 섬과 그 뒤를 양옆으로 장식하는 깎아지른 산들. 거기에 길게 포말을 이끌고 나타나는 보트 한 대까지. 수백만 장의 여행 엽서에 등장할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아무리 세심한 미술감독이라도 이렇게 연출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사실 1960년 코닥(Kodak)이 스피릿 아일랜드의 풍경을 광고 이미지로 사용하면서 섬의 존재는 전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세상의 대상이 아닌 섬처럼. 그 후에도 이 풍경은 필름 세대의 후손인 디지털카메라 세대에 영향을 미쳤다. 2014년 애플의 아이패드 론칭 쇼케이스에서도 동일한 풍경이 등장한 것이다.
크루즈에서 내리면 섬의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딱 25분간 섬을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이때부터 관광객들은 섬을 촬영하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이느라 바쁘다. 온갖 촬영 장비 앞에서 포즈를 취하면서 “좀 더 오른쪽으로” “손을 들어봐” “뒤로 돌면 어때?” 등을 외친다. 이렇게 스피릿 아일랜드는 또다시 수백 장의 사진에 자신을 알리고 만다.
4 멀린 레이크 크루즈는 매년 봄부터 가을까지 운행한다. www.banffjaspercollection.com
레이크 루이스
Lake Louise
로키의 빙하호 중에서도, 레이크 루이스는 가히 독보적 인기를 뽐낸다. 컬럼비아 빙원부터 아이스필즈 파크웨이를 2시간쯤 달려 도착한 마을 레이크 루이스(호수 이름이자 마을 이름이다). 거리는 비교적 조용하지만, 차량은 줄줄이 드나든다. 분명 많은 사람들이 호수 변에 모여 있을 것이다. 영국 공주의 이름을 딴 그 유명한 호수를 감상하기 위해서.
직접 맞닥뜨린 레이크 루이스 호수는 명성에 어울리는 자태를 뽐낸다. 물빛은 합성한 것처럼 푸른 에메랄드색을 띠고, 잘생긴 산들과 빅토리아 빙하(Victoria Glacier)에 장막처럼 둘러싸여 있다. 대부분의 여행객은 호수 초입에서 의식처럼 기념사진을 촬영한 후 왼쪽으로 가서 카약에 탑승해 망중한을 즐기거나, 오른쪽으로 진로를 바꿔 호수 변 하이킹을 누린다. 어느 곳을 택하든지 레이크 루이스 호수의 에메랄드빛을 한껏 차지할 수 있는데, 때로는 초현실적 느낌이 편견을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지구상의 모든 호수가 에메랄드빛이 아닐까 하는. 그리고 그 호수 주변에는 전나무 숲이 있어야만 하는 게 아닐까 하는. ‘빙하의 침식작용으로 생긴 미세한 암분이 물에 스며든 결과’라는 과학적 설명은 부차적 문제다.
1911년 5 페어몬트 샤토 레이크 루이스 (Fairmont Chateau Lake Louise)가 호숫가에 문을 열었을 때에도 여행객들은 그 빛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캐나다 횡단철도 운영사인 캐나디언 퍼시픽 레일웨이 (Canadian Pacific Railway)가 지은 이 기념비적 호텔은 초기 로키산맥을 여행하는 부유층과 도전적인 등반가들의 아지트였다. 그 후로 100여 년간 레이크 루이스를 찾은 이들은 자연의 절경과 호텔의 우아함에 숱한 영감을 받았다. 때로 그 영감의 원천이 무엇이었는지 서로 비교해보기 위해서는 화합의 장소도 필요했다. “솔직히 이곳에 머물면 바깥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잘 몰라요. 하하. 저희는 로키산맥 여행의 태동기에 이곳까지 찾아온 이들이 경험했을 법한 분위기를 최대한 되살리려고 하죠. 자연과 함께 사람들이 교류하는.” 페어몬트 샤토 레이크 루이스의 홍보 매니저가 말한다.
레이크 루이스가 속한 밴프 국립공원(Banff National Park)에는 연간 400만 명이 찾아든다. 캐나다 국립공원 중에서 가장 많은 방문객 수. 즉 매년 400만 명의 여행객이 로키산맥에서 공통의 이야깃거리를 채집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1세기 전 호수 앞 오두막에 옹기종기 모여 그날의 모험기를 나누던 등산객들이 이를 예측이나 했을까? 아마도 하루만큼의 감흥으로도 온몸을 충분히 채울 수 있어 훗날을 까맣게 잊었겠지. 호텔 내 레스토랑에서 에메랄드빛에게 건배를 올리느라 바쁜 지금의 사람들처럼.
스프레이 밸리 주립공원
Spray Valley Provincial Park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의 여름과 〈레버넌트〉의 겨울. 비포장도로를 타고 스프레이 밸리 주립공원 깊숙이 들어서니 6 카나나스키스(Kananaskis)에서 촬영한 영화 속 배경이 그려진다. 카나나스키스는 밴프나 레이크 루이스의 번잡함을 피해 캐나다 현지인이 즐겨 찾는 지역이다. 에메랄드빛 호수는 없지만, 그보다 더 보석 같은 자연이 숨 쉰다. 황량하지만 심도 깊고, 처연하면서도 장엄한.
물길은 잿빛을 머금고 초지는 황갈색을 띠고 있다. 그 뒤를 가로막은 날 선 봉우리들은 강풍이 바위를 할퀴고 간 상흔 같다. 물길은 평원과, 평원은 산과 구분되고, 산은 해발 2,500미터의 수목 한계선을 따라 숲과 바위의 경계가 확실히 구분되어 짙은 풍경의 층이 나뉜다. 두 눈으로도, 카메라 렌즈로도 자연의 각기 다른 장면을 온전히 담아내기란 불가능하다. 그간의 로키산맥이 애써 숨겨놓은 듯한 자연의 속살인가. 보는 사람을 초라하게 만드는 힘이 느껴진다.
아이맥스 영화 같은 풍경을 가슴에 품고, 도로를 따라 천천히 이동하던 우리는 또다시 길가에 멈춘 차량들을 발견한다. 곧바로 짙은 갈색의 동물 하나가 도로변에 어슬렁 나타난다. 7 그리즐리 베어다. 둥그런 몸집의 곰은 작고 단단한 눈망울로 차에 탄 관객들을 쳐다본다. 예상치 못한 신비로운 조우다. 재빨리 카메라를 꺼낸다. 뷰파인더 안에서 그리즐리 베어는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다가 장난스레 흙을 파헤친다. 그 모습은 마치 이 땅에는 다른 생명도 존재한다는 확실한 표현 같다. 거대한 로키산맥 안에서 인간은 자연의 일부에 불과하다. 며칠 동안 산의 장막에 둘러싸여 길 위를 달렸건만, 이제 자연 가까이 겨우 몇 미터 더 다가섰다.
6 이 역시 원주민 크리족이 붙인 이름이다. ‘도끼를 머리에 맞고도 살아난 용사’를 의미한다.
7 북아메리카에서만 서식하는 회색 곰이다. 최상위 포식자로, 덩치가 큰 그리즐리는 두 발로 완전히 일어서면 3m에 가깝다. 무게는 수컷의 경우 180~500kg, 암컷의 경우 100~360kg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