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술 전국 유랑
Distillery Trip in Korea — 우리 술 전국 유랑
여행 기획자, 여행 PD, 여행 작가. 경력 도합 50년이 넘는 여행 전문가 셋이 전국의 술도가를 찾아 떠났다. 이름하여 *술술술술 프로젝트. 서울에서 제주까지 전국을 유랑하며 술 향에 취하고 사람 이야기에 푹 빠진 시간들을 모아 책으로 출간하고 영상도 제작했다. 잊지 못할 술맛과 이야기가 함께한 우리 술 전국 유랑기를 살짝 엿본다.
사진 이정선
일러스트 김수수
자료제공 <술술술술-전국 술도가 50 유랑기>, 인페인터글로벌
* '술술술술'은 우리 술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지역성과 특산물이 연계된 식문화를 다양한 채널을 통해 공유하기 위해 시작된 우리 술 프로젝트다. 국내 양조장 50곳을 직접 취재하며 단행본과 유튜브 영상을 제작했고, 테이스팅 노트, 우리 술 일러스트 전국 지도, 스티커 등의 굿즈 판매와 술 만들기, 테이스팅을 주제로 한 워크숍, 우리 술 일러스트 전시회도 준비 중이다. 나아가 술술술술팀과 함게하는 양조장 투어를 통해 '술을 만드는 술도가와 술을 즐기는 사람을 잇는 여행'을 꿈꾼다.
맹개술도가
얕은 강물을 건너야 들어갈 수 있는 육지 속의 섬 안동 맹개마을에 10헥타르 면적의 밀밭이 있다. 맹개술도가의 박성호 이사는 가을에 이곳에 씨를 뿌려 이듬해 여름 추수한 밀로 ‘진맥소주’를 만든다. ‘진맥’은 밀의 옛 이름이다. 조선 시대 음식 조리서 〈수운잡방〉에 안동소주를 밀로 빚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진맥소주는 밀누룩과 통밀을 섞어 삼양주 방식으로 빚은 다음 상압식 동 증류기에서 두 차례 증류하고 이를 1년 이상 저온 숙성한다. 농사부터 술이 되기까지 최소 2년이 걸리는 것이다. 진맥소주는 쌀이나 찹쌀을 주원료로 하는 안동소주와 향부터 다르다. 고소하고 화사한 향이 코끝에 확 밀려들어온다. 구운 토스트 향과 바나나 향이다. 원액에 가까운 53도 증류주는 부드럽다 못해 오일리하게 넘어간다. 밀의 재탄생이자, 안동소주의 재발견이다.
양조장 · 카페 : 경북 안동시 도산면 선성중앙길 32, 054-841-1105
밀밭 · 술창고 : 경북 안동시 도산면 가송길 162-135, 010-7604-0065
뱅꼬레 와이너리
하형태 대표는 40년 역사의 한국 와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1982년 최초의 한국 와인 마주앙(Majuang) 생산에 참여하며 와인과 인연을 맺은 그는 유럽과 호주의 와이너리에서 노하우를 쌓은 한국 와인의 선구자. 이후 청도 감 와인, 문경 오미자 와인, 청송 대추 와인 등이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정통 와인 제조법을 한국의 과일에 적용해 고유의 풍미가 살아 있는 드라이한 맛이 특징이다. 하형태 대표는 무슨 과일이든 와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적은 강수량과 풍부한 일조량으로 포도, 자두, 복숭아, 사과, 감 등 품질이 뛰어난 ‘과일의 고장’ 경북 영천은 최적의 와인 실험장인 셈. 현재 그의 딸 하세비 씨와 아들 하성호 씨가 합류해 뱅꼬레 와이너리의 미래를 차근차근 준비 중이다.
경북 영천시 금호읍 창산길 100-44
054-333-3010
은척양조장
야트막한 은자산이 아늑하게 감싸 안은 은척양조장은 자매 양조가가 운영하는 술도가다. 1997년 시아버지에게 양조장을 물려 받은 임주원 대표가 여동생 임희주 부사장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대표 막걸리는 두통이나 트림을 유발하지 않는 발효 방법을 2년간 연구해 완성한 ‘은자골 생탁배기’. 상주 쌀과 직접 빚은 전통 누룩으로 장기간 발효한 은자골 생탁배기는 탄산이 거의 없는데도 상쾌하고 깔끔하다. 알코올 도수도 시중 막걸리(6도)보다 낮은 5도다. 취하기 위해 마시는 술이 아니라 전통 발효 음식으로서의 막걸리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대로 은은하고 포근한 맛이다. 막걸리 판매 수익을 지역 사회에 환원하며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양조장으로, 막걸리 맛만큼이나 후한 인심으로도 유명하다.
경북 상주시 은척면 봉중2길 16-9
054-541-6409
댄싱사이더 컴퍼니
미국의 크래프트 맥주 브루어리들은 사과를 이용해 계절 한정 사이더를 생산하곤 했는데, 이것이 발전해 크래프트 사이더 하우스가 등장했다. 양질의 사과가 많이 자라는 한국에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 이대로 대표와 구성모 이사는 사과로 유명한 충주의 탄금호 인근에 양조장을 차렸다. 대표 사이더는 ‘댄싱파파’와 ‘스윗마마’. 인공감미료 대신 사과즙을 첨가한 ‘스윗마마’는 사과를 한 입 배어 문 듯 달콤하고 향긋하다. ‘댄싱파파’는 단맛을 줄여 드라이하면서 깔끔한 것이 특징으로, 사이더도 이런 맛을 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여기에 오미자, 블루베리, 딸기, 복숭아 등을 첨가해 개성과 재미를 더한 블렌딩 라인업도 눈에 띈다. 로컬을 기반으로 20~30대의 젊은 구성원이 선보이는 사이더는 경쾌함과 자유로움이 탄산처럼 톡톡 터진다.
충북 충주시 중앙탑면 인담길 35-1
043-844-1616
1 경북 안동 맹개술도가
2 경북 영천 뱅꼬레 와이너리
3 경북 상주 은척양조장
4 충북 충주 댄싱사이더 컴퍼니
청산녹수
장성의 폐교에 자리한 청산녹수는 현대의 과학기술을 활용해 전통 술의 발전을 꾀하는 양조장이다. 주변 논에서 계약 재배한 무농약 쌀로 술을 빚고, 술과 누룩에 대한 연구와 교육도 병행한다. 학교 건물의 구조를 그대로 살려 교실에 양조장이 들어서 있고 복도는 방문객 견학로로 활용한다. 현 생명산업공학과 교수인 김진만 대표는 수많은 실험과 연구를 통해 미생물이 가장 좋은 술의 향미와 산미를 만들 수 있는 저온발효기법을 도출해냈다. 온도가 낮기 때문에 보통 1~2주면 끝나는 발효가 30일 이상 걸린다고. 산소 공급으로 효모가 최적의 술 맛을 내는 ‘산소발효기술’로 특허도 냈다. ‘딱 좋은 상태’라는 뜻의 ‘골디락스’에서 앞 글자를 딴 막걸리 ‘G12’는 이름처럼 당도와 산미가 절묘한 균형을 이루어 청산녹수 양조 기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전남 장성군 장성읍 남양촌길 19
061-393-4141
예술 주조
홍천 두메산골에 자리한 예술 주조의 모든 공정은 전통 방식을 따른다. 이는 번거롭고 오래 걸리고 정성을 들여야 한다는 의미다. 그중에서도 누룩 빚기는 정회철 대표가 가장 까다롭게 공을 들이는 작업이다. 전통주의 맛을 좌우하는 것이 바로 누룩이기 때문이다. 예술 주조에선 직접 띄운 밀 누룩으로 약주 2종(동몽, 동짓달 기나긴 밤)과 탁주 2종 (만강에 비친 달, 홍천강 탁주), 증류주 2종(무작53, 무작 30)을 만든다. 쌀 누룩인 ‘이화곡’으로 빚은 이화주(배꽃 필 무렵)도 두 종류 있다. 좋은 재료를 아낌 없이 넣어 빚은 술은 옹기에서 4~5개월 발효와 숙성 과정을 거친다. 증류주는 이 원주를 다시 단식증류기에서 두 차례에 걸쳐 상압 증류한다. 특수 제작한 숨 구멍이 작은 옹기에서 4년간 숙성한 ‘무작 53’은 오래도록 묵직하게 남는 깊은 향이 그야말로 신선이 마실 법한 술이다.
강원 홍천군 내촌면 동창복골길 259-5
033-435-1120
호랑이배꼽 양조장
호랑이를 닮은 우리나라 지도에서 배꼽에 해당하는 평택에 예술가 가족이 만드는 전통주 양조장이 있다. 드라마 촬영지이기도 한 60년 된 한옥과 갤러리 같이 꾸민 시음장으로 이루어진 호랑이배꼽 양조장은 평택에서 나고 자란 예술가 가족의 역사만큼 다채로운 이야기를 품고 있다. 서양화가인 부친 이계송 화백과 도예가이자 향토요리 연구가인 모친 그리고 각각 디자이너와 사진가인 두 딸이 이곳에서 ‘평양냉면 같은 슴슴한 맛’의 막걸리를 선보인다. 비결은 생쌀 발효법. 갓 도정한 평택산 백미 70퍼센트에 쌀겨가 남아 있는 현미 30퍼센트를 혼합해 으깬다. 직접 디딘 쌀 누룩과 천연암반수를 더해 저온에서 총 100일만에 완성되는 생쌀 막걸리는 깜짝 놀랄 정도로 가볍고 산뜻하다. 탄산이 거의 없고 우아한 배향과 은은한 쌀의 단맛이 기분 좋게 느껴진다.
경기 평택시 포승읍 충열길 37
031-683-0981
역전양조장
‘바싹불고기’로 유명한 한식 노포 역전회관에서 오리지널 막걸리를 출시했다. 1990년부터 운영을 맡아온 3대 김도영 대표가 딸과 만든 막걸리 ‘역전주’다. 막걸리 학교, 가양주연구소 등에서 우리술 만들기에 푹 빠진 모녀는 식당 건물 1층 가장 안쪽에 5평 남짓의 아담한 양조장을 만들고 본격적인 생산에 돌입했다. 농업진흥청에서 최고 품질로 평가 받은 삼광쌀로 빚은 ‘역전주’는 은은한 단맛에 적당한 산미가 있어서 바싹불고기, 낙지볶음, 선지술국 등 입에 착착 붙는 전라도식 음식과 찰떡궁합이다. 역전주에 가수하지 않고 6 개월 이상 저온 숙성해서 술지게미를 가라앉힌 ‘역전한주’도 있다. 반 정도는 맑게, 나머지 반은 술지게미와 섞어서 마시는 걸 추천한다. 맑은 부분은 화이트 와인 같은 느낌이라면, 탁한 부분은 좀 더 진득하고 깊은 맛을 즐길 수 있다.
서울시 마포구 토정로 37길 47
02-703-0019
1 전남 장성 청산녹수
2 강원 홍천 예술주조
3 경기 평택 호랑이배꼽 양조장
4 서울 마포 역전양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