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36시간 여행
섬과 자연, 사람의 이야기가 담긴 남해에서의 지속 가능한 36시간 여행.
36 Hours in Namhae — 남해 36시간 여행
68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남해는 손을 덜 탄 것이 단점이자 곧 장점인 여행지다. 섬이 간직한 흥미로운 유산과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거기에 반해 이주한 사람들의 이야기. 따사로운 햇살과 바람 아래 나른하게 흘러간 남해에서의 지속 가능한 36시간 여행을 따라가보자.



첫째 날 11:00
다시 한 번, 남해의 관문으로
남해각은 1970년대 우리나라 관광 산업의 태동을 상징하던 건축물 이다. 1973년 6월 하동과 남해를 잇는 남해대교가 개통하면서 남해는 섬에서 육지로 거듭났다. 길이 660미터에 이르는 ‘아시아에서 가장 긴 현수교’의 등장을 반긴 것은 남해 주민뿐만이 아니었다. 개통식을 구경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인 인파가 10만 명에 이르렀을 정도. 남해군의 인구가 13만 명이던 때다. 그후 2년 뒤 대교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남해각이 들어섰다.
지금은 사라진 해태그룹이 관광 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며 북쪽에 지은 것이 임진각, 남쪽에 지은 것이 바로 남해각이다. 남해대교가 여행 명소로 떠오르 면서 숙박과 휴게 시설을 갖춘 남해각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관광 인파로 북적거렸다. 기념사진 촬영과 가이드 역할을 겸하던 사진사가 많을 때는 20명 남짓 상주했다고 한다. 1 이후 관광 트렌드가 변화하면서 남해각의 호시절은 점차 옛이야기가 되었고, 낙후된 모텔 차지였던 건물은 2018년 노량대교가 개통하면서 그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
다행히 남해각의 시간은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올해 복합문화 시설로 재개관한 남해각은 남해 여행의 관문으로 두 번째 전성기를 꿈꾼다. 남해대교의 주탑을 본떠 만든 기둥을 비롯해 건물 본래의 특징은 그대로 살렸고, 카페와 레스토랑, 나이트클럽 등이 들어섰던 지상 1층과 지하 1층은 전시 공간으로 변신했다. 숙박 시설이던 2층은 남해를 방문한 여행자를 위한 플랫폼으로, 3층은 야외 전망대로 탈바꿈했다. 특히 1970년대부터 2000년대 까지, 남해대교와 남해각에 관한 기록을 아카이빙해 선보인 상설전시는 남해 주민에게 이 두 장소가 지닌 정서적 상징성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남해각의 마지막 사진사 박용길 씨의 기록이 담긴 영상부터 남해대교를 배경으로 찍은 수많은 이들의 사진, 대교 개통 소식을 다룬 신문 기사, 다리를 배경으로 촬영한 포니 자동차 지면 광고, 모텔의 객실 열쇠까지. 다양한 전시물을 둘러보는 동안 창밖으로는 붉은색 남해대교가 한 점의 작품처럼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곳 사람들에게 남해대교는 오랫동안 남해의 대문을 상징했어요. 타지에 나갔다 돌아올 때면 다리를 건너면서 비로소 집에 왔다고 느끼는 거죠.” 남해각의 김향숙 해설사의 말이 이곳의 존재 이유에 힘을 보탠다. 앞으로 남해각에는 야외 무대와 라운지가 들어설 예정이고, 남해대교는 보행자 전용 다리가 되어 다양한 콘텐츠를 덧입을 준비를 하고 있다.
경남 남해군 설천면 남해대로 4216

14:00
여행을 추억할 책 한 권
왕복 2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어지간해선 2층을 넘지 않은 낮은 건물이 일렬로 나란히 늘어선 거리. 한때 지족 마을의 번화가였다지만, 지금은 고요하고 나른한 분위기만 감돈다. 시야를 가리는 가로수도 고층 건물도 없어, 남해의 따스한 햇살이 공평하게 깃드는 덕분인지 외지인에게도 위화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현지인에겐 ‘동부대로 1876번길’이라는 새 주소 대신 ‘지족 구거리’로 더 익숙하다. 아마도 책방은 2018년 3월, 이 거리에 문을 연 독립서점이다.
책방 주인 정수진 대표는 ‘여행 이후에도 여운이 남는 곳’이 남해였다고 말한다. 그 덕(?)에 아무 연고도 없는 남해로 이주했고, 여행지에서 크고 작은 서점을 즐겨 찾던 기억을 살려 아마도 책방을 열었다. 아담한 내부를 채운 몇 개의 책장과 테이블 위에는 환경, 동물권 등 주인의 관심사와 취향이 담긴 책과 여행자를 고려한 에세이, 소설 등이 가득하다. 책 속의 인상적인 구절이나 짧은 감상평이 적힌 메모는 서점에 머무는 시간을 즐겁게 만드는 요소. 크지 않은 규모임에도 안쪽으로 가족 단위 손님을 위한 독립된 공간이 딸려 있는 것도 독특하다. 1 이 거리의 많은 건물과 마찬가지로 도로에 가까운 전면부는 상점, 뒷쪽은 살림집으로 사용되던 구조를 살린 것이라고. 구석구석 배어 있는 운영자의 정성 어린 손길과 따뜻한 취향을 찬찬히 살펴보고 남해 여행의 여운을 더해줄 책 한 권 구입해보자.
경남 남해군 삼동면 동부대로 1876번길 19, 목~월요일 12~5pm
1 구거리를 걷는 동안 종종 눈에 띄는 빈 상점들도 그 너머 안쪽에는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다.

16:00
섬이 자부심을 갖게 되면
삼동면 시문교차로에 이르면 마을 초입에 우직하게 자리한 네모 반듯한 건물이 눈에 띈다. 남해각이 남해대교 이후의 남해를 상징 한다면, 돌창고는 그 이전의 남해를 상징하는 건축물. 마을의 곡식과 비료 등을 저장할 목적으로 지은 공동 창고는 건축 자재 수급이 원활하지 않았던 시절에 자연석을 쪼개 하나둘 쌓아 올린 것이 특징이다. 1970년대 남해대교가 개통하면서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돌창고는 자연스레 방치되었다. 남해 곳곳에 남아 있는 돌창고 중 시문리에 위치한 것은 1967년에 지었다.
최승용 대표가 시문 돌창고를 매입해 원형 그대로 복원한 시기가 2016년. 그렇게 시작된 돌창고 프로젝트는 신진 작가의 전시, 레지던스 프로그램 등 문화 예술 인프라 확장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선보였다. 현재는 남해 고유의 전통과 문화를 아카이빙하고 재생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남해돌창고에서 전시 중인 〈보호수, 와 : 남해 보호수 프로젝트 2021〉도 그중 하나다. 남해의 각 마을에 있는 보호수 31그루를 찾아 기록하고, 전시와 출판, 지도 제작 등을 통해 그 가치를 알리고 있는 것.
전시를 관람한 뒤엔 돌창고와 마주한 애매하우스에 들르는 것이 필수 코스다. 1960년대 이래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던 유휴 공간을 개조해 카페와 레지던시로 재탄생했다. 1층 카페에선 로컬 식자재를 활용한 메뉴를 제공하는데, 그중 남해의 이파리로 만든 페스토와 남해 해모아 목장의 숙성 치즈를 올린 이파리 빵, 최승용 대표의 어머니가 하동에서 직접 만들어 보낸 미숫가루 음료가 대표 메뉴다.
경남 남해군 삼동면 봉화로 538-1

20:00
전망 좋은 방
상주장은 남해에서 보기 드문 호스텔이다. 고급 호텔과 리조트 아니면 펜션과 민박. 이렇게 양극단으로 갈리는 남해의 숙소 분포 사이에서 눈에 띄는 이유다. 상주은모래비치 주변의 주택가 골목으로 조금만 걸어 들어가다 보면 흰색 담벼락이 갑자기 끝나면서 상주장 마당 한가운데를 차지한 커다란 벚나무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은 일대의 여느 집처럼 민박을 제공하던 3층짜리 주택을 개조해 2019년 말 처음 문을 열었다. 건물 2층과 3층에 자리한 10개의 객실은 모두 2인실로, 철저히 ‘쉼을 위한 공간’ 에 초점을 맞춘다. 각 객실에는 욕실과 침대, 작은 테이블 겸 수납함, 냉장고가 전부. 꼭 필요한 것 외에 휴식을 방해하는 요소는 모두 없앴다. 여기에 널찍한 창에 담긴 은모래비치의 풍광이 정점을 찍는다.
마당 한쪽에 위치한 별관에는 커피 로스터리가 자리 잡고 있다. 호스텔이 군더더기를 싹 걷어내고 오롯이 휴식에 집중한 것처럼 상주장 커피 또한 직접 로스팅한 원두로 드립 커피만 제공하는데, 커피를 좋아하는 이라면 이곳에 묵지 않더라도 본관 1층 라운지에 잠시 머물며 커피 한 잔을 즐겨보자.
경남 남해군 상주면 남해대로 697번길 22-1

어떻게 남해에 내려와서 돌창고를 시작하게 됐나요?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시절이었는데, 남해 살던 친구가 “돌창고라는 게 있으니까 와서 한번 봐라.” 고 하더군요. 박사 마지막 학기를 남겨뒀을 때였을 거예요. 방학 때 와서 보고 문화유산적 가치도 있고 경제적 가치도 있다고 생각을 해서 구입을 해놓고, 돌아가서 박사 과정을 수료한 후 다시 내려와서 돌창고를 시작하게 됐죠.
완전히 이주를 한 거예요?
그렇죠. 문을 닫고 내려왔죠. 문을 조금도 열어 놓지 않고 딱 닫았어요. 조금이라도 열어 두면 아마 힘들 때 다시 올라갈 수도 있으니까. 2016년 3월에 내려와서 2016년 7월에 첫 전시를 했어요.
돌창고를 시작할 때 롤 모델이나 참고한 콘텍스트가 있나요?
처음에는 그런 생각으로 국내에 비슷한 곳은 진짜 다 가본 것 같아요. 제가 2 〈재생여행〉 에 쓴 것처럼 일본에서 유휴 공간을 활용해 프로젝트 하는 곳도 찾아다녔죠. 다 보고 나선 ‘이제 다 잊어버리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죠. 프로그램이나 건축 인테리어에서 참고할 만한 건 없었어요. 왜냐하면 그럴 만한 돈이 없었으니까요. 유명 아티스트를 데려올 수 없고, 좋은 마감재를 쓸 수도 없고.... 그래서 돌아와서는 다 잊었어요. 내 결핍 속에서 작은 것을 시작해야 되니까.
남해 주민들은 돌창고 프로젝트를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받아들였을 것 같아요.
주민들은 이제 그만큼 했으면 가라고 했어요. ‘들어 보니 서울에서 공부도 했다고 하는데, 한 번 해봤으니 그만 돌아가라. 부모 속 썩이지 말고.’ 그런 말들을 했죠. 아직까지 지역민은 이곳에서 전시를 하거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에 큰 관심이 없어요. 하지만 궁극적으로 모든 프로젝트는 이곳의 배경을 만드는 일이에요. 남해 주민에게 이야기를 만들어 드리고 자신들의 고장에 프라이드를 갖게 되는 게 최종 지향점이죠. 프라이드를 가지면 찾아오는 사람한테 잘해주죠. 자랑스럽죠. 그리고 훼손하지 않죠.
꾸준히 전시를 열고 프로젝트도 많이 하셨잖아요. 반응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성공적이었나요?
주로 실패했어요. 하는 프로젝트마다.
이유가 뭘까요?
예를 들어, ‘보호수 전시를 열면 1만5,000명은 보겠지’라고 생각했는데 한 100명 봤다거나 또는 전시 예산이 한 1,000만 원이면 되겠지 했는데, 실제로 2,000만 원 들었다거나.... 그런 실패가 많았죠. 그런데 관광객이나 여행객의 반응은 나쁘지 않아요. 신기해하고 좋아해요. 덕분에 남해를 젊게 보는 인식이 생겼다거나. 그런 건 긍정적이라고 생각해요. 전에는 남해가 그런 이미지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은퇴하고 나서 해변가에서 펜션을 운영하면서 살 수 있는 따뜻한 남쪽 섬 정도였는데, 지금은 젊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시작해 볼 수 있는 동네가 되어 가고 있으니까요.

남해와 아무런 연고가 없나요?
저는 고향이 하동이라서 남해 근처 동네에 살았죠. 다리 건너 낚시하러 오거나 다랭이논을 구경하러 오곤 했어요.
남해의 매력이나 가능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그걸 말할 수 있는 수준은 안 되는 것 같지만, 제가 하는 프로젝트에 빗대서 생각해보면 ‘경관’이겠죠. 사람들이 남해를 보면 편안함을 느끼거든요. 남해의 풍경은 대부분 스케일이 아담하고 작아요. 거리감도 별로 없고요. 섬도 가깝죠. 동해처럼 멀리 있지 않고 손에 잡힐 것 같거든요. 산도 높지 않아요. 논밭이 대규모 평원 지대처럼 펼쳐지는 것도 아녜요. 잘하면 잡힐 것 같고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편안하다고 느끼죠. 그래서 어떤 분은 보통 여행을 좋을 때 가는데, 울고 싶을 때도 올 수 있는 곳이 남해라고 표현하시더라고요.
앞으로 돌창고 프로젝트가 어떤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 하는 바람은?
남해에 내려와서 처음 3년 동안은 도시에 있는 문물들 가지고 와서 전파하기 바빴어요. 그리고 이제 그건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남해돌창고의 10년 프로젝트로 3 남해 보호수, 4 남해 소리, 5 어부의 밥상 이렇게 세 가지를 잡았어요. 2030년까지 이어지는 프로젝트인데, 벌써 2년 차가 됐거든요. 보호수 같은 경우는 같은 주제로 작가만 달라지면서 진행되고, 남해의 소리는 아직 저희가 발굴하지 못한 소리가 800여 개가 됩니다. 어부의 밥상도 당연히 마찬가지고요. 향토 음식이 얼마나 많겠어요. 이런 것들을 매년 더 깊어지게 해나가는 게 목표죠.
2 〈재생여행〉 최승용, 3people. 최승용 대표가 남해 돌창고를 구입 후 일본 나오시마, 오카야마, 돗토리로 떠난 재생여행의 기록을 담은 책이다.
3 남해에 있는 노거수 31그루를 아카이빙하고, 보호수의 문화적 가치를 발견해 재해석하는 프로젝트.
4 남해의 전승 민요를 발굴하고 국내외 음악가 들과협업해새로운남해의 소리를 만드는 프로젝트.
5 남해 어부들을 만나 잊혀가는 남해의 향토 음식을 기록하고 사라져 가는 어족자원에 대한 관심을 통해 남해의 맛을 찾아가는 프로젝트.

둘째 날 7:00
다도해의 아침
금산 남쪽 절벽에 기댄 보리암은 신라시대 원효대사 세운 사찰로, 강화도 보문사, 양양 낙산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해상관음성지로 꼽힌다.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서 기도하고 조선 건국의 꿈을 이뤘다고 전해지며 예부터 효험 있는 기도처로 이름을 알렸다. 보광산의 보광사가 ‘금산의 보리암’ 으로 바뀐 것도 이때부터다.
남해 여행자에게 보리암은 딱히 소원을 빌 것이 없어도 당연히 찾게 되는 전망 포인트다. 매표소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걸어가면 되니 부담스러운 산행도 아니고, 그마저도 충분히 보상해주고 남을 절경이 기다린다. 초록 사이로 불쑥불쑥 튀어나온 암벽 사이에 들어앉은 보리암에 가까워지면, 초승달 모양으로 육지를 파고든 상주은모래비치와 주변을 에워싼 지붕들, 주변 산세와 다도해가 어우러진 풍광이 눈앞에 펼쳐진다. 금산의 산자락과 남해의 섬들이 어디가 산이고, 어디가 섬인지 모르게 첩첩이 겹쳐져 이성복 시인의 ‘남해 금산’ 속 한 구절처럼 풍경은 ‘푸른 바닷물 속에 잠긴다’.
기왕 보리암까지 왔다면, 여기서 200미터 정도 더 올라가는 금산산장도 한 번쯤 가볼 만하다. 1950년대에 지은 등산객 쉼터가 최근 ‘컵라면 맛집’으로 불리며 인기인데, 사방이 탁 트인 벤치에 앉아 발 아래 풍광을 마주하면 ‘SNS 인증샷 명소’에 대한 반감이 절로 사라진다. 산장에 사는 붙임성 좋은 고양이라도 나타나면 되려 인증샷을 찍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보리암 : 경남 남해군 상주면 보리암로 665

10:00
남해의 빛
‘해변’이 아니라 ‘비치’. 상주은모래비치는 이곳의 정식 명칭이다. 키 큰 소나무 숲이 병풍처럼 둘러싼 백사장과 그 모래가 둥글게 감싼 해변은 파도가 잔잔하고 경치가 아름다워 오랜 세월 남해 사람들과 남해를 찾은 여행자들에게 핫플레이스였다. 상주해수욕장이라는 옛 이름이 사라진 지 오래이고, 최근에는 캠핑 사이트를 정비해 오토 캠핑장으로 인기여도, 세련된 느낌보다는 빛 바랜 사진 속 풍경 같은 순수함이 남아 있다. 이름만 들어도 여전히 어딘가 젊은 시절의 설익은 낭만이 느껴진다.
백사장의 모래가 은빛으로 빛난 다고 해서 붙은 이름인데, 햇살에 반짝이는 바다의 물결이 오히려 은빛에 가깝다. 수심이 깊지 않아 물놀이에도 제격이다. 바다에 몸을 담그기 어려운 계절에는 2킬로미터 길이의 백사장을 따라 거닐거나 소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물멍을 해도 좋다. 해변을 등지고 돌아서면 아침에 오른 금산이 마주 보인다. 몇 시간을 사이에 두고 보리암과 상주은모래비치, 각각의 풍경 속에 서 있는 기묘한 경험을 하게 되는 셈. 남해의 풍광을 좀 더 입체적으로 경험하고 싶다면 바다와 산 모두 방문하길 추천한다.
상주은모래비치 : 경남 남해군 상주면 상주로 17-4

12:00
남쪽 바다에서 불가리안 가정식 즐기기
유즈노모레는 남해뿐 아니라, 국내 어디서도 생소한 불가리안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각각 부산과 서울 출신인 부부가 남해로 이주해 지난 여름에 유즈노모레를 오픈했다. 언덕 위 독일마을이 내려다보는 물건리의 논 한쪽, 유즈노모레의 새하얀 건물은 원래 남편의 할머니가 사시던 집이었다. 남편에겐 어린 시절부터 익숙해 큰 감흥이 없던 이 집과 동네에 아내는 첫 눈에 반했다.
불가리아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아내의 솜씨를 살려 직접 만든 불가리아식 스테이크 케밥체, 시레네 치즈를 소복이 올린 불가리아식 샐러드 숍스카 살라타 등 이름부터 생소한 메뉴를 선보이는데, 하나같이 예상을 뛰어넘는 맛이다. 불가리아의 대표 디저트 바니짜와 발칸 지역에서 즐겨 먹는 바클라바 같은 디저트 메뉴는 머뭇거리는 사이 금세 동날 정도다. 할머니의 집 전면부 타일과 창틀을 그대로 살린 건물과 멋스러운 릴랙스 체어, 그 앞의 황금빛 논 뷰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바깥 공간도 놓치지 말자. 유즈노모레는 불가리아어로 ‘남쪽 바다’라는 뜻이다.
경남 남해군 삼동면 동부대로 1030번길 104

15:00
남해의 맛
남해 여행에서만큼은 기념 선물로 무엇을 사가야 할지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다. 현지 먹거리를 판매하는 로컬 푸드 전문 숍 겸 카페 앵강마켓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 교토를 연상시키는 단정한 목조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죽방렴 어장과 직거래해 공수한 죽방렴 멸치부터 남해 바다에서 채취한 미역, 다시마 등의 해조류, 남해산 쌀까지 품질 좋은 지역 특산품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앵강만에서 직접 재배한 보리로 만든 보리차, 남해 유자의 향을 그대로 담은 유자티 등 차 종류도 다양하다. 여행자도 부담 없이 구입할 수 있도록 소량씩 판매하고 정갈한 패키지를 더해, 구경하다 보면 빈 손으로 나가기 쉽지 않을 것이다. 남해의 로컬 푸드를 제대로 소개하는 공간이길 바라는 주인 부부의 마음에 한쪽 카페에서 즐길 수 있는 음료는 최대한 심플하게 구성하고 사이드 메뉴는 양갱이 전부. 안뜰이 시원스레 내다보이는 커다란 창문과 진짜 다다미를 얹은 좌식은 누구나 핸드폰을 꺼내 들게 만드는 촬영 스폿이다.
경남 남해군 남면 남서대로 772

앵강마켓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김균환(이하 김) 처음 남해로 이주해서 펜션과 카페를 운영했는데, 찾아오신 손님들이 남해에 대해서 많이 모르시더라고요. 남해 에서 선물로 구입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보니까 뭘 사가면 좋을지도 자주 물어보시고요. 그래서 우리가 한 번 판매해보자고 생각했죠. 1~2년 정도 펜션을 운영하면서 준비했어요.
직접 와서 보니 공간과 브랜딩에 신경을 많이 쓰신 것 같아요.
이선혜(이하 이) 저희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전문가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공간 디자인을 하는 친구와 브랜드 디자인을 하는 친구가 모여 프로젝트처럼 시작했어요.
어떻게 남해를 선택하신 거예요?
김 이십 대 초반쯤 남해에 한 번 와봤는데, 너무 좋아서 이후로 여러 번 다녀갔어요. 혼자 여행도 다니고, 와이프를 만나고 나서도 매년 같이 왔었죠.
남해에 오시기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이 둘 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했어요. 결혼하고 나서도 맞벌이를 했는데, 아이가 둘이라 조금 힘들었어요. 도시에서 생활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할 법한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죠. 남편이 결혼 전부터 시골에 내려가서 가게를 운영하면서 살고 싶다는 얘기를 굉장히 많이 했거든요. 그래서 회사를 다니면서도 준비를 꾸준히 했어요. 요리 학원을 다니고,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해 계속 공부도 하고. 그러다 기회가 생겨서 내려오게 됐죠.
남해 주민 입장에서는 외지 사람들이 와서 이런 활동을 하는 게 약간 의문이지 않았을까요?
이 오픈하기 전부터 군청의 관련 담당 공무원부터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려고 노력하셨어요. 조용한 시골 마을에 젊은 친구들이 들어오면 분위기 자체가 바뀌잖아요. 그래서 주변 상가에 계신 분들도 저희를 좋게 봐주시고. 전통 5일장이 열리는데 그곳에서 마켓을 열면 어떻겠냐 제안해주기시도 하고요. 사실 펜션을 준비하다가 인테리어 때문에 잠시 공사를 중단했어요. 그때 이 지역에 대해 공부하고 주민들과 교류할 기회가 있었죠. 멸치 잡는 일을 도우면서 ‘죽방멸치가 이렇게 잡히고, 이렇게 생산되는구나. 일반 멸치랑 이런 게 다르고 그래서 이렇게 비싸구나’ 라는 것도 알게 됐어요. 일반 시장에서 물건을 사와서 재포장해서 파는 게 아니라, 어장은 어디를 가야 되고 어느 때 잡은 멸치가 좋은 지 학습하게 된 거잖아요. 그런 경험 덕분에 우리가 이런 가게를 운영한다고 했을 때 지역 주민들이 낯설게 보지 않으신 것 같아요.

앵강마켓이 생각하는 남해 식자재의 매력은?
이 남해는 기후가 온화해서 1년에 이모작을 해요. 겨울에는 멸치 어장을 운영을 하지 않는 대신 마늘이나 시금치 등을 재배해서 1년 내내 농수산물이 풍족하죠.
김 지력이 좋은 편이라 임야 쪽은 산딸기나 블루베리 같은 열매나 유자 같은 과실이 굉장히 잘 자라요. 수확량이 많지는 않은데 잘 자라죠.
남해의 차도 준비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김 일부 제품화를 시작했어요. 1년 정도 준비해 판매 중인데, 몇 년 전부터 좀 더 전문적으로 차를 배우고, 아예 밭을 마련해서 직접 키우면서 공장 설립까지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남해에서 차를 재배하는 곳이 저희 밖에 없어요. 가까운 보성에서도 차 농사를 지으면서 공장도 따로 세워서 진행할 계획입니다.
이 남편이 학교 다닐 때부터 다도에 관심이 많았어요. ‘이왕 하는 일 재미있게 해보면 어떨까, 이미 개발되고 알려진 특산품 말고 우리가 남해에서 다른 걸 한 번 해보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했죠. 기존에 보성에서 계약 재배로 받아오던 차가 있었는데, 올해 초에는 저희가 남해 석교마을에 차밭을 조성했어요. 최근에 꽃이 피고 자리도 잘 잡았기 때문에 아마 내년부터는 수확이 가능할 것 같아요.
외지에서 방문하시는 분이 많죠?
이 고객의 80퍼센트 이상이 외지에서 온 관광객이에요. 시골 시장에서 파는 제품이 아니라 백화점이나 온라인 숍에서 판매해도 부족하지 않는 퀄리티의 브랜딩 제품을 볼 수 있으니까 찾아오는 것 같아요. 저희 제품이 일반 마트에서 파는 건어물 제품과 비교하면 가격대는 조금 높아요. 하지만 품질이 좋고 포장에 좀 더 신경을 써서 선물하기에도 좋게 만들었기 때문에 만족도가 높은 것 같아요. 처음에는 이 공간에서 제품 판매만 했는데 손님들이 물건만 사 가면서 아쉬워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이곳과 어울리게 티 음료 중심으로 시그너처 메뉴를 구성했죠. 양갱 같은 다과를 곁들였더니 또 너무 좋아하시고. 사진을 찍기 위해서 오시는 분들도 많고요.
앵강마켓을 운영하면서 아쉬웠던 점은?
이 앵강마켓을 지속 가능한 브랜드로 키우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데, 저희 브랜드와 매장을 카피의 대상으로만 여길 때는 좀 속상하더라고요. 한 1~2 년은 그런 일 때문에 힘들었지만, 이제는 생각이 좀 바뀌었어요. 누군가 카피를 하면 ‘우리는 조금 더 나아가자’ 라고.
김 그래서 농사도 직접 하게 되는 거죠. 매일매일 아이디어 회의를 하면서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어요. 저희 경쟁력은 그것밖에 없는 것 같아요.
앞으로는 이곳을 어떻게 더 발전시킬 계획인가요?
이 지금은 많이 협소하지만, 다른 공간을 하나 더 마련하더라도 이 자리에서 계속 운영하면서 앵강마켓을 이어가고 싶어요. 나중에 아이들이 이어서 할 수 있는 브랜드로 만들어가고 싶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