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가를 부르는 브르타뉴 여행

Adventure is Calling in Bretagne — 모험가를 부르는 브르타뉴 여행

크레페와 시드르(cidre), 소금 캐러멜, 스트라이프 티셔츠 그리고 토착 정령 코리건(korrigan)까지.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는 마치 하나의 국가처럼 고유한 정체성을 띤다. 10세기부터 16세기 중반까지는 브르타뉴 공국이라는 독립국가를 이루기도 했다. 변방이라는 위치는 곧 스스로 존재의 이유를 세우는 이유 중 하나였다. 암석 해안과 습지 등 거친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브르타뉴 사람들은 브레통(Breton)을 자처하며 역사적으로 늘 혁신과 모험을 거듭했다. 오늘날 브레통은 고유의 유산을 계승하되 변화를 망설이지 않는다. 그들의 독창적 에너지는 지금도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현대예술을 만날 수 있는 낭트의 골목에서도, 생말로의 과감한 파도에서도.

일반적으로 브르타뉴는 렌을 주도로 하는 현재의 브르타뉴 레지옹(Région Bretagne)만이 아니라 옛 브르타뉴 공국 영토를 통칭한다. 행정구역상 페이드라루아르(Paysde la Loire)에 속하지만 여전히 브르타뉴의 문화적 중심지인 낭트를 포함해서 말이다. 쥘 베른(Jules Verne)의 도시 낭트에서 출발해 브리에르 지역 자연 공원과 렌을 거쳐 생말로까지 여행하며 모험의 영감을 받아보자. 기차와 렌터카 모두 괜찮은 수단이다.

글 이기선
사진 고아라
협조 프랑스관광청

낭트
Nantes

© 고아라

낭트 도심에선 보도 위에 그려진 초록색 선을 쉽게 볼 수 있다. 낭트의 주요 명소를 잇는 루트인 라 리뉴 베르트(La Ligne Verte) 혹은 그린 라인이다. 이 선은 역사가 13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브르타뉴 공작의 성(Château des Ducs de Bretagne), 현대미술관, 기차역 그리고 낭트의 거리마다 널린 설치 작품을 지나며 총 12킬로미터로 이어진다. 그린 라인은 프랑스에서 여섯번째로 큰 도시 낭트의 새로운 정체성을 보여주는 한 가지 사례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파괴된 도심을 빠르게 재건한 이 도시는, 1980년대 들어 조선업과 제조업이 쇠퇴하자 도시 재생 사업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그린 라인은 당연히 일 드 낭트(Île de Nantes)를 대표하는 레 마신 드 릴(Les Machines de l’Île)도 빼놓지 않고 지난다. ‘기계의 섬’ 이라는 이름의 이 프로젝트는 낭트 출신의 공상과학 소설가 쥘 베른과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구상한 기계를 구현하는 콘셉트. 낭트시와 공연 제작사 라 마쉰(La Machine)이 협업했다. 레 마신 드 릴의 마스코트인 기계 코끼리 그랑 엘레팡(Grand Éléphant)이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산책에 나선다. 육중한 발을 신중하게 내디디고, 유연하게 휘어지는 코로 물줄기를 내뿜으며. 쥘 베른의 소설 <스팀 하우스> 속 코끼리 모양의 증기기관차를 본뜬 그랑 엘레팡은 키가 8미터, 무게가 48.4톤에 달한다. 철과 목조 피부 아래에는 내장 대신 친환경 하이브리드 모터, 배터리, 실린더 62개와 더불어 50명까지 탑승 가능한 라운지를 갖췄다.

30분간 구경꾼을 몰고 다니던 그랑 엘레팡이 행진을 마치고 라 갈레리 데 마신(La Galerie des Machiens)의 보금자리로 돌아간다. 폐창고에 들어선 거대한 기계 실험실 겸 갤러리인 이곳에서는 레 마신 드 릴 프로젝트의 실시간 진행 상황을 볼 수 있다. 기계 스케치 전시는 기본이고, 막 탄생한 기계 동물과 곤충을 시승해보는 것도 가능하다. 전시장의 높은 천장에서는 날개 너비가 8미터에 달하는 기계 왜가리가 입을 쩍 벌린 탑승객들을 실은 채 날갯짓하고, 울창한 수풀 사이에서 기계 개미가 꿈틀거린다. 2022년이면 이 기계 생물들은 36미터 높이의 기계 나무 라흐브흐 오 제롱(L’Arbre aux Hérons)에 서식하게 될 것이다. 물론 지금도 쥘 베른의 소설 속 등장인물이 되어볼 수 있다. <해저 2만리> 속 심해 세계를 구현한 3층짜리 회전목마 카루젤 데 몽드 마랭 (Carrousel des Mondes Marins)에서 괴물 물고기의 등에 올라탈 수 있으니까.

생나제르
St-Nazaire

© 고아라

프랑스에서 가장 긴 루아르강은 발 드 루아르(Val de Loire)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거닐던 전설적 고성 사이를 흘러내려온 뒤, 낭트와 생나제르에 다다라 완전히 다른 풍경을 맞닥뜨린다. 강을 따라 60여킬로미터 이어지는 아트 트레일 에스튀에르(Estuaire)에서 말이다. 말 그대로 ‘강 하구’를 뜻하는 에스튀에르는 낭트에서 생나제르까지 이르는 강 유역을 고스란히 전시장으로 삼는다. 자동차는 물론 도보나 자전거 혹은 크루즈로 에스튀에르를 돌아볼 수 있다. 세계 각국의 예술가가 제작한 설치 작품과 조각 작품, 건축물 30여 점을 표지 삼아서.

에스튀에르 순례는 바로 일 드 낭트에서 시작한다. 섬의 서쪽 강둑에서 설치 작품 <레 자노(Les Anneaux)>를 이루는 알루미늄 고리 18개 너머로 낭트의 강변 풍경을 관찰하노라면, 건너편 암반 위에 설치된 유령처럼 하얀 나무 <루나 트리(Lunar Tree)>가 눈에 들어온다. 낭트 근교 마을에선 지구온난화 때문에 <라 메종 당 라 루아르(La Maison dans la Loire)>라는 3층짜리 집이 루아르강에 살짝 잠겨 있는, 미래의 쓸쓸한 풍경이 보인다. 길이 3,356미터에 이르는 생나제르 다리(Le pont de Saint-Nazaire) 앞 해변에 이르면, 대서양 횡단을 마치고 이곳에 잠든 거대 바다뱀의 알루미늄 뼈대를 조우할 수 있다. 중국 설치 예술가의 작품 <세르펭 도세앙(Serpent D’océan)>이다.

에스튀아르의 마지막 작품을 보려면, 생나제르 다리를 건너 프랑스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생나제르의 조선소 샹티에 드라틀랑티크(Chantiers de l’Atlantique)로 향해야 한다. 북극권 너머를 탐사한 프랑스 최초의 잠수함 에스파동(Espadon)이 정박된 콘크리트 요새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의 테라스 파노라미크(Terrasse Panoramique)로 가자. 착시 효과를 활용한 작품 <쉬트 드 트리앙글 생나제르(Suite de Triangles Saint-Nazaire)>는 옥상에 표시된 특정 지점에 서야만 볼 수 있다. 그래야 사방에 펼쳐진 광활한 조선소 시설의 지붕과 벽면마다 그려진 붉은 형태가 합쳐져 여러 개의 거대한 삼각형을 이루는 것이다.

브리에르 지역 자연 공원
Parc Naturel Régional de Brière

© 고아라

“왜가리예요! 황새와 함께 늪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새죠. 흰눈썹울새가 보이면 알려줄게요. 관찰하기 꽤 힘든 새랍니다.” 가이드 다미엥(Damien)이 사방을 부지런히 관찰하며 말한다. 오리 떼가 우리와 같은 눈높이에서 느긋하게 헤엄친다. 너른 풀밭에선 거위 몇 마리가 어디론가 바삐 향하고, 얼룩덜룩한 말 떼가 명상에 빠져 있다. 브리에르 지역 자연 공원에서 거룻배 샬랑(chaland)을 타면 실컷 보게 되는 풍경이다. 바닥이 평평해 물결 위에 바싹 달라붙어 항해하는 이 전통 배는 브리에르 지역 자연 공원의 습지를 탐험하는 유일한 수단으로, 승객이 습지의 리듬에 적응하게 해준다. 루아르강 하구 북쪽에 자리한 땅 4만여 헥타르를 포괄하는 브리에르 지역 자연 공원에 속한,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넓은 습지 그랑드 브리에르(Grande Brière). 북부 유럽과 아프리카 사이를 이동하는 철새들이 해마다 이곳에 쉬어 간다. 습지의 절반을 뒤덮는 갈대밭은 박새, 알락해오라기, 도요새, 들쥐 등 다양한 생물종의 서식지다.

그랑드 브리에르는 지역민 브리에롱(Brièron)의 터전이기도 하다. 이미 15세기에 브르타뉴 공작은 브리에르의 습지를 지역민의 공공재산으로 선포했다. 브리에롱은 목축과 어업, 수렵과 더불어 토탄을 채취해 생계를 유지했다. 19세기 산업화로 토탄 채취가 줄어든 이후에는 관광업이 이를 대체했다. 오늘날 생나제르와 중세 도시 게랑드(Guérande), 유명 휴양지 라 볼 에스쿠블라크(La Baule-Escoublac)를 포함해 브리에르에 접한 코뮌 21곳이 그랑드 브리에르 모티에르(Grande Brière Mottière)라 불리는 습지 구역을 공동 소유하며 관리한다.

브리에르에서는 보트 투어뿐 아니라 새 관찰, 승마, 낚시 등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람사르 습지의 생태학적 가치와 지역 고유의 문화가 브리에르의 매력이다. 가이드 다미엥을 비롯한 브리에롱은 여전히 거룻배의 노를 저으며, 짚으로 지붕을 엮은 전통 가옥 수천 채가 지역에 남아 있다. 20세기 작가 알퐁스 드 샤토브리앙(Alphonse de Chateaubriant)을 인용하자면, “브리에르 토양에 대한 격렬한 사랑, 같은 마을 출신 브리에롱 사이의 침범할 수 없는 연대로 이뤄진 강렬한 근성”을 지금도 엿볼 수 있는 셈이다.

© 고아라

렌
Rennes

© 고아라

광장 한쪽에 놓인 음질이 좋지 않은 스피커에서 올드 재즈가 흘러나오고, 가족과 친구들이 웃음을 터뜨리며 춤을 춘다. 토요일 아침에, 알록달록한 꽃 시장과 노천 카페 틈에서 말이다.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큰 시장인 마르셰 데 리스(Marché des Lices)는 무려 400년 넘게 렌의 토요일 오전을 책임져왔다. 구도심을 상징하는 브르타뉴 의회 건물 서쪽, 플라스 데 리스(Place des Lices)를 중심으로 꽃과 과일, 채소, 커피 등 노점 300여 개가 몇 블록을 빼곡하게 점령한다. 19세기에 지은 고풍스러운 실내 시장 알 마르트노(Halles Martenot)에는 육류와 해산물 노점이 손님을 맞느라 분주하다.

미식은 옛것과 새것이 어우러진 렌 구도심을 탐험하는 좋은 방법이다. 마르셰 데 리스의 다음 코스로는 가까운 카테드랄 생피에르(Cathedral Saint-Pierre) 앞 크레프리 라 모트 피케(Crêperie la Motte Picquet)가 적당하겠다. 50년 넘게 전통식으로 구워내는 갈레트와 크레프를 코스로 먹을 수 있다. 로컬 시드르를 곁들여서. 여기서 도보 15분 정도 떨어진 크래프트 펍 말로안(Maloan)은 유럽 각국의 크래프트 맥주를 즉석에서 캔에 담아 선보이는 곳이다. 전통 반목조 가옥이 늘어선 거리에서 독창적인 맥주를 시음하거나 가져갈 수 있다. 로컬 크래프트 맥주를 좀 더 알아보고 싶다면 바로 한 블록 떨어진 맥주 편집숍 셰 알랭(Chez Alain)에 들르자. 열광적인 맥주 마니아인 젊은 주인장 알랭이 브르타뉴를 포함해 세계 각국의 맥주 수백 종을 엄선해 선보이고 친절한 조언까지 건네니 실패할 확률이 낮다. 여기서 두 블록 떨어진 뒤랑 쇼콜라티에(Durand Chocolatier) 또한 미각적 모험심을 일깨운다. 19세기 조각가의 공방에서 쇼콜라티에들이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각지의 소규모 경작지에서 재배한 카카오로 기발한 초콜릿을 창조해낸다. 렌에서 채취한 사프런과 메밀 꿀을 활용한 초콜릿이나 브르타뉴산 해초를 가미한 초콜릿 혹은 게랑드 꽃소금을 뿌려 내주는 초콜릿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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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말로
St-Malo

© 고아라

생말로에서 가장 긴 해변인 그랑드 플라주 뒤 시용(Grande Plage du Sillon) 끝까지 걸어가면 성벽이 나온다. 구도심을 둘러싼 1.8킬로미터 길이의 성벽 북쪽의 플라주 드 봉스쿠(Plage de Bon-Secours)에 가면, 오직 생말로에서만 볼 수 있는 향수 어린 풍경이 펼쳐진다. 일광욕객이 누워 있는 황금빛 해변 너머로, 해수 수영장과 그랑베섬(île du Grand-Bé)이 어우러진 풍경. 18세기 생말로 출신의 작가이자 정치인 르네 드 샤토브리앙(René de Chateaubriand)이 잠들어 있는 이 작은 화강암 섬은 썰물 때면 걸어서 갈 수 있지만, 밀물이면 섬이 된다. 이는 관광객이 생말로에서 귀가 따갑게 듣게 되는 주의사항이다.

생말로의 환경을 진정 지배하는 요소는 바로 조수간만의 차다. 이 지역 조수간만의 차는 최대 13미터이며, 만조가 절정에 이르는 시기는 매년 3월부터 9월까지다. 세계 최초의 대규모 조력 발전소가 1967년 생말로에 들어서기도 했다. 만조가 되면 지금 눈앞에 펼쳐진 저 황금빛 해변이 바닷속에 잠기는 건 물론이고, 해안 산책로를 걸어 호텔로 돌아가다가 물벼락을 뒤집어쓸 수도 있다.

생말로는 에릭 로메르 감독의 1996년작 〈여름 이야기〉에서 낭만적 이야기의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했지만, 원래 액션물이 더 어울리는 곳이다. 브르타뉴에서도 생말로의 독립적 정신은 유독 도드라지는데, 1590년에서 1593년까지 독립 공화국을 선포했을 정도다. 지금도 생말로 성에는 프랑스와 브르타뉴 국기 위에 빨간색과 파란색이 조합된 생말로 국기가 휘날린다. 16~17세기, 영국 해협을 주름잡던 사략 해적이 명성(혹은 악명)을 떨친 생말로에서는 많은 유명한 탐험가와 해적이 탄생했다. 유럽인 중 캐나다까지 처음 항해한 모험가 자크 카르티에(Jacques Cartier)나 인도양을 주무대로 활약한 로베르 쉬르쿠프(Robert Surcouf)처럼 말이다.

그러니 생말로의 진수를 경험하려면 보트 투어를 택하자. 성벽 앞 생말로 항에서 출발해 랑스(Lance)강 하구의 조력 발전소를 지나 영국식 빌라가 늘어선 이웃 휴양지 디나르(Dinard), 빨간 모자를 쓴 듯 보이는 19세기 등대를 거쳐, 다시 생말로 성벽 앞에 떠 있는 17세기 요새 포르 뒤 프티 베(Fort du Petit Bé)와 그랑베섬으로. 윤슬이 반짝이는 바다 곳곳에 남아 있는 황폐한 섬 요새가 이곳이 생말로라는 사실을 내내 일깨운다. 치열한 전투와 모험의 이야기가 이제는 낭만이 된.

© 고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