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e into the World — 위선임과 김멋지의 야반도주
때는 2014년, 십년지기 두 여인은 평소 버릇처럼 던지던 말을 실천에 옮긴다. 거창한 포부나 원대한 계획 대신, 회사 생활에 지친 몸과 서른을 앞둔 복잡한 마음으로 시작한 세계여행. 막상 떠난 뒤론 거침없었다. 고민될 땐 일단 저질렀던 781일이었다. 돌아온 뒤엔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다양한 활동을 하며 일상도 여행자처럼 이어갔다. 급기야 2019년, 이들은 JTBC 여행 프로그램 〈트래블러〉의 메인 작가로 새로운 여정에 도전한다. 솔직함과 유머가 가장 큰 무기인 야반도주자 위선임과 김멋지. 그들의 이야기가 우리를 끌어당기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은가?
인터뷰 정리 표영소
사진 정수임
장소협조 어반 스페이스 오디세이
P 피치바이피치
S 위선임
M 김멋지

P 세계를 여행하며 블로그에 기록하고 여행 영상을 올리고 책까지 출간하면서 이렇게까지 유명해질 거라 예상하셨나요?
S 전혀 못했어요. 블로그에 올리는 글이니 누군가 볼 거라는 생각은 했죠. 그 ‘누군가’는 여행에 관심 있는 소수 마니아층? 그리고 저희 지인 정도일 거라 예상했어요. 그런데 의외로 많은 분이 좋아해주셔서 그때부터 관종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 같아요. (웃음)
M 그때부터가 아니라, 이 친구는 타고난 관종이에요. 애초에 다 계획이 있었을 거예요. 워낙 관심받는 걸 좋아해서 중학교 때부터 일기를 공유했을 정도니까요.
P 두 분이 중학교 때부터 아는 사이였나요?
S 아뇨. 대학교 친구예요. 제가 중학생 때 인터넷에 일기를 올리는 사이트가 있었어요. 일기라는 게 본디 자기만 보는 글이잖아요. 그런데 제가 거기에 일기를 올렸어요. 멋지가 그걸 듣고 “너는 그 때부터 관종의 끼가 있었구나.” 하더라고요.
M 싸이월드 이전 단계부터 이미 자신의 글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관심받는 걸 좋아했던 거죠.
S 그렇지만 계획적으로 블로그를 한 건 아니었어요. 세계 여행 자체가 인생의 큰 이벤트니까 꼭 기록으로 남겨야겠다, 그런 생각이었죠.
P 여행을 가기 전부터 글을 쓰고 영상도 찍겠다는 생각은 하셨던 거네요.
M 영상은 여행을 하면서 찍게 됐어요. 원래 카메라를 가져 갔거든요. 그것도 처음에는 휴대폰으로 찍을 생각이었는데, 이 친구가 큰돈 들여서 가는데 좀 제대로 찍어보자고 해서 구입한 거였어요. 막상 여행을 가서 보니 다른 여행자들이 카메라보다 작은 뭔가를 들고 다니는 거예요. 고프로 같은 액션캠으로 영상을 찍더라고요. 그래, 우리도 이걸로 영상을 남겨보자, 해서 여행 중에 장비를 구매를 했어요.
S 당시 돈도 없고 현지에서 구매하기엔 열악한 환경이라 한국에서 저희를 만나러 오는 지인을 통해 저렴한 버전을 구입했죠.
P 글쓰기를 원래 좋아하셨어요?
S 네, 좋아했어요. 그냥 늘 꾸준히 뭔가 쓰는 걸 좋아했지, ‘내가 글을 쓴다’ 라는 식으로는 생각 안 했던 것 같아요.
M 저는 제가 글을 쓸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 못 했어요. 블로그를 하면서도 우리 여행을 기록하고, 그걸 일부러 보러 와주시는 분이 있으니 조금 더 재미있게 써보자, 그 정도였죠. 그러면서도 딱히 글을 쓴다는 생각은 안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쓰고 있더라고요.
S 제가 많이 시켰어요. “왜 나만 하냐, 너도 좀 해봐라.” 하고. 멋지랑 저랑 코드가 잘 맞아요. 어떤 것이든 유머를 섞어서 풀어내고 싶어하는 열망이 있어요. 글을 쓸 때도 그런 취향이 맞았던 것 같아요.
P JTBC 〈트래블러〉에 작가로 참여하고 계신데요, 시즌 1과 시즌 2의 여행지 모두 남미였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S 이유가 있어서 남미를 선택했다기 보다,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선택을 했더니 공교롭게 두 나라 모두 남미였다는 답이 맞는 것 같아요. 저희 둘 다 여행할 때 남미를 정말 좋아했어요. 최장 기간 머문 것도 남미 대륙이었고요. 보통 제작진과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쳐 여행지를 정하는데, 아무래도 저희가 작가로 참여하다 보니 저희 의견이 좀 더 들어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네요.
P 프로그램이 시즌 2로 이어질 때 시즌 1과 달라진 점이나 고민은 없으셨나요?
M 처음 시작할 때 저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여행자의 모습을 보여주자’ 였어요. 보는 사람도 같이 여행하는 느낌이 드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죠. 어디를 가느냐 보다 여행자의 마음이나 느낌, 자잘한 모습을 더 중요하게 담고 싶었는데, 시즌 1에선 그게 잘 표현된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다른 한쪽에선 여행지의 다양한 매력을 조금 더 보고 싶어 하시더라고요. 저희 프로그램의 특징이 여행자의 마음을 들려주는 내레이션이잖아요. 그 요소는 그대로 가져가되 여행지의 매력을 좀 더 살리려면 어디로 가는 게 좋을까 고민하다가 시즌 2로 이어지게 됐죠.

P 시즌 2까지 무사히 마치셨는데, 앞으로의 바람이 있으신가요?
M 앞으로도 기회가 계속 주어진다면, 여행자의 사소한 취향부터 대단한 도전까지, 바로 옆 동네부터 지구 반대편까지, 폭넓게 사람 냄새 나는 여행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처음 목표대로 같이 떠난 듯한 기분이 들 수 있도록.
S 여행을 하다 보면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는 듯한 순간이 있어요. 내가 이걸 보려고 여기 왔구나, 하게 되는. 그런 부분만 아름답게 편집하는 것도 좋지만, 그 순간을 맞기까지 힘들고 짜증나는 시간, 감내해야 하는 과정 자체가 전부 여행이잖아요. 거기서 얻는 심상과 느낌 하나하나까지 세세하게 담아내는 게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P 순수하게 여행을 위한 여행과 일로 떠나는 여행은어떻게 다르던가요?
M 둘 다 분명 여행이긴 한데, 자유의 범위가 다르더라고요. 아직도 기억나는 순간이 있어요. 시즌 1에서 류준열 트래블러가 쿠바의 바라데로(Varadero)라는 도시에서 붉게 물든 바다를 보고 옷을 벗고 뛰어들어가서 노을을 감상해요. 그걸 보면서 한 가지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나도 들어가고 싶다!’ 제작진이 아니라 여행자로서 바다 안에서 노을을 보고 싶은데 그럴 수 없으니 너무 아쉬웠죠.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제작진과 출연자가 다같이 여행하는 느낌이었어요. 트래블러의 여행을 따라가다 보면 제가 하지 않았을 법한 선택을 하니까 그런 면에서도 새로운 여행 경험이었죠.
P 〈트래블러〉 제작 과정에선 여행자에게 모든 선택권이 주어지나요?
S 네, 그래서 1인칭에서 3인칭으로 시점이 바뀐 작품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아, 나는 저 때 이랬는데, 트래블러는 지금 무슨 느낌일까’ 상상하면서 보는 여행?
M 저희가 보통 모든 감정을 다 말로 표현하지는 않잖아요. 여행 중에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트래블러와 이야기를 나누고, 그것을 시청자가 좀 더 듣기 편하고 현장감을 느낄 수 있도록 다듬어서 내레이션으로 표현해주는 게 저희의 몫이었죠.
P 담당 피디가 프로그램 참여를 제안할 때 무슨 말을 했나요? 전문 방송작가가 아니라 여행자에게 여행 프로그램 제작을 제안한 거잖아요.
S 일단 최창수 피디님이 저희 블로그의 애독자셨대요. 전혀 몰랐는데, 어느날 블로그에 안부글을 남기신 거예요. 저희가 여행하는 과정을 다 지켜보셨다며, 우리가 만날 때가 된 것 같다는 의미심장한 말씀과 함께 연락 달라고 하셨죠. 처음엔 놀랐고 조금 지나고 나선 ‘사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부터 저희를 작가로 섭외한 건 아니고요, 여행을 통해 재미있는 걸 만들어보고 싶은데 같이 해보자고 하셨죠.
M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일이 커졌어요.
S 첨언이나 참고 자료를 드리는 정도의 단발성 일이 될 거라 예상했는데, 미팅이 이어지다 보니 어느 순간 계약서를 쓰고 있더라고요.

P 〈서른, 결혼 대신 야반도주〉 중 작가의 말을 보면, 책 출간을 상당히 망설이셨다죠. ‘이미 무수히 많은 여행책이 있는데 우린 뭐가 다를 수 있을까’ ‘우리 여행이 정답이 아닌데 그걸 보여주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고요.
S 여행을 하다 보면 제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는 것 같아요. 멋있는 풍광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 그 자체로도 좋지만, 그 때마다 튀어나오는 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게 좋더라고요. 여행이 어떤 문제를 해결해주는 열쇠가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지만, 내 자신에 대해 좀 더 잘 파악하게 되면 문제를 해결해나갈 힘이 길러지는 것 같아요.
M 저는 선임이랑 다르게 무조건 재미예요. 즐거움.
S 그것만 추구하는 분이에요.
M (웃음) 저는 오감을 쓰는 걸 좋아하거든요. 보고 듣고 맞고 만지고. 일상에서 벗어나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익숙하지 않은 자극을 받았을 때의 즐거움 자체가 정말 커요. 저에게 여행을 떠나는 것은 한마디로 즐거움이에요.
P 긴 시간 타지를 떠돌며 예상치 못한 일을 수없이 겪고 나면 일상 속 웬만한 일에는 그리 놀라지 않게 될 듯한데요.
M 그럴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구요.
S 여행 중 겪은 것과 똑같은 일을 다시 경험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런데 그건 굳이 여행이 아니어도 누구나 그럴 테고. 예상 밖의 일을 마주하면 여전히 새롭게 당황하고 분노하지만, 그래도 여행 전이랑 조금이라도 달라진 게 뭐가 있을까 생각을 해보니, 약간은 담대해진 것 같아요. 세계 각지에서 온갖 이상한 일을 겪고도 살아남았고, 돈이 정말 부족하던 시기도 있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밥을 먹고 사니까. 이 일도 결국은 지나가겠거니 생각하게 됐어요. 저희끼리는 ‘마음의 근육’이 생겼다고 말해요.
M 보통 일상에서는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잖아요. 여행 중엔 짧은 시간에 온갖 일을 압축적으로 겪게 되니까 잔머리도 늘고, 문제 해결 능력도 좋아진 것 같아요.
P 아무런 준비 없이 새로운 여행지를 방문해서 벌어지는 사건·사고를 매번 자처(?)하시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M 사람 성향은 안 바뀐다고들 하잖아요. 둘 다 워낙 준비를 안 하는 성격이라 노력해도 안 되더라고요.
S 그래서 늘 후회했어요. 어떤 사건이 벌어지고 그게 해결이 될 때쯤 ‘다음에는 꼭 준비하자’고 다짐을 하는데 역시나 똑같았죠. 이제는 그것까지 다 받아들였어요. 우리는 미리 준비하고 챙기는 게 잘 안 되는 사람이구나, 그렇다면 차라리 다른 방향으로 해결 방법을 생각하자,는 아니고 말만 이렇게 하는 거죠. (웃음)
M 그런데 난 그것도 다 재미있었어. (웃음)

P 기존의 여행 경험을 간직한 채 세계 여행을 앞둔 시점으로 되돌아간다면, 할 것과 하지 않을 것은?
M 하지 말아야지, 하는 건 없고, 다시 간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여행을 하고 싶어요. 여자 둘이 여행하다 보니 위험 요소를 줄이기 위한 저희만의 규칙 같은 게 있었어요. 해가 진 뒤에는 숙소 밖을 나가지 않는다, 같은. 그런데 때론 적당한 선을 찾는 게 은근히 어려운 거예요. 누군가 나에게 다가올 때 선의인지 아니면 나쁜 의도가 있는지, 그런 걸 파악하는 게 쉽지 않았죠. 포용 범위를 넓힐수록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반면, 위험에 노출될 확률도 커지니까요. 누군가 손을 내밀었을 때 겁이 나서 물러선 적이 있는데, 그때 같이 여행을 했다면 어땠을까, 더 재미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지난 여행에는 무게 중심을 안전 쪽에 두었다면 다음 번에는 행동 반경을 넓히고 좀 더 균형 있게 여행하고 싶어요.
S 여행을 하면서 어느 선까지가 적당한지 판단할 수 있는 요령이 생긴 것 같기도 해요. 저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딱히 생각나지 않네요. 하고 싶은 건 기록을 좀 더 잘 남겨야겠다. 기록하는 걸 좋아하고 열심히 했지만, 구체적인 목표를 갖고 한 일이 아니라 나태해지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중남미 대륙은 기록이 거의 없는데, 나중에 책을 쓸 때 좀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M 저희 블로그를 보시면 몇 개월씩 통으로 비어 있고, 몇몇 나라는 글이 아예 없기도 해요. 그러다 갑자기 나타나서 “저희 호주에 있습니다” 그러고. (웃음)
S 한편으로는 부담감도 있었어요. 관심을 받게 되고 많은 사람이 재미있게 읽어주니까 ‘더 재미있게, 더 완벽하게’ 써야할 것 같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미루다 보면 감흥이 사라지고. 다시 떠나게 된다면 부담없이 그때 그때 휴대폰 메모장에라도 기록을 하고 싶어요.
P 꼭 가고 싶은 곳은 없나요?
M 그런 건 딱히 없고, 아마도 가보지 못한 곳을 갈 것 같아요.
S 바람이 있다면 이 시국이 좀 괜찮아져서 어디라도 갈 수 있게 되면 좋겠어요.
P 세계 여행을 하면서 터득한 나만의 여행 철칙 혹은 노하우가 있다면?
S 많이 생각해봤는데, 딱히 알려드릴 노하우가 없더라고요. 삽질만 많이 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 여행에 관한 팁이라면, 여행이 길어지다 보면 마음대로, 계획대로 되는 일이 없으니 순간순간 화가 올라올 때가 있어요. 혼자라면 그때 그때 분출하면 되는데, 동행이 있으면 그것도 쉽지 않죠. 저희는 그런 순간마다 ‘마법의 문장’을 던졌어요. “좋게 좋게 생각하자.” 그냥 센텐스(sentence)만 놓고 보자면…
M 어우, 깜짝이야! 영어 되게 잘하는 사람 같네. 이게 생방송이었다면 네 발을 밟았을 지도 몰라. (웃음) 이게 어떻게 나온 문장이냐면, 저희가 인도로 첫 해외여행을 갔을 때였어요. 여행 중 사기를 당해서 덥고 짜증이 난 상태에서 길바닥에 걸터앉아 있었죠. 그때 선임이가 한 말이 딱 이거였어요. 말은 ‘좋게 좋게’ 인데, 표정을 보니까 너무 사나운 거예요. 그 순간 빵 터졌죠. 아니, 저 얼굴로 이렇게 좋은 말을 하다니! 크게 웃고 나니까 별 것 아닌 일처럼 느껴지고, ‘그래,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가자’ 그랬죠. 그 이후로 안 좋은 일이 있거나 기분이 가라앉을 때 이 말을 꺼내기만 해도 웃음이 나더라고요.
S 환기가 되는 거죠. 물살이 확 바뀌는 지점처럼요. 포인트는 얼굴을 구긴 채로 말하는 거예요. 이게 저희가 싸우지 않고, 따로 귀국하지 않고, 절교하지 않고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노하우가 아니었을까 해요.
M 귀국 당일 공항 도착 사진을 SNS에 올렸더니 지인들이 “같이 들어올 줄 몰랐다.” “싸우고 따로 들어올 줄 알았는데!” 라면서 저희가 2년간 여행한 것보다 그걸 더 놀라워했어요. (웃음)

P 여행을 할 때 꼭 지키는 나만의 의식(ritual)이라 할 만한 게 있는지요?
S 책을 보시면 알겠지만, 제가 도시를 옮길 때마다 한국에 계신 엄마한테 엽서를 썼어요. 솔직히 말하면 지극한 효심에서라기 보다 혼자 계실 엄마한테 죄송해서 어떻게든 만회하기 위해 시작한 거였어요. 첫 도시부터 엽서를 띄우기 시작해서 중간에 정말 여러 번 포기할 뻔 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해냈죠.
M 저는 코끼리를 좋아하거든요. 세상에 코끼리를 소재로 한 물건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요. 그런데 그게 다 짐이잖아요. 속옷을 3장 챙기냐, 4장 챙기냐를 두고 고민하는 판에, 장식품을 사는 건 무리였죠. 그래서 가방에 달고 다닐 수 있는 코끼리 장식 딱 하나만 구입하고 보는 걸로 만족하면서 다녔어요. 그 외에 꼭 해야지, 그런 건 없었…
P 예를 들면, 현지 술을 꼭 맛본다든가…
M 아, 그거였구나!!
S 그건 정말 숨쉬듯이 한 거여서 전혀 의식을 못 했네요. 무조건 했죠!
M 밥 먹듯이 한 것 중에 하나라. (웃음)
S 아무래도 배낭여행자니까, 한국의 소주처럼 그 나라의 싼 술을 항상 즐겼어요.
P 그중에 특별히 기억나는 술이 있나요?
M 브라질에 카이피리냐(Caipiriñha)라는 칵테일이 있어요. 카샤샤(Cachaça, 사탕수수)로 만든 브라질 증류주에 라임이랑 설탕을 넣어서 만드는데, 빨대로 마시면 설탕 알갱이 한 알 한 알과 라임의 새콤함이 어우러져서 정말 너~무 맛있는 거예요. 많이 마셨어요!
P 책, 영화, 음악, 방송, 만화 등 장르를 불문하고 두 분의 여행에 영감을 준 작품이 있을까요?
M 딱 하나만 꼽으라면 다카하시 아유무의 〈러브 앤 프리〉라는 책이에요. 제 인생이 여행 때문에 바뀌었다고 할 수 있는데, 거기에 영향을 준 책이죠. 처음 선임이랑 다녀온 인도 여행이 정말 좋았거든요. 돌아와서도 그 추억을 곱씹으며 지냈는데, 어느날 선임이가 다시 떠나겠다는 거예요. 휴학하고 돈을 벌어서 여행을 가겠다며 같이 가자고. 당시 저는 빨리 밥벌이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커서 거절했어요. 등록금도 대출받고 알바해서 생활하는 마당에 무슨 여행이냐 싶었죠. 그러던 중 도서관에서 우연히 이 책을 읽게 됐어요. 절반도 채 안 읽었는데 주인공이랑 여행자가 이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와요. “넌 왜 여행을 떠나 왔어?” “지구에 태어났으니까 지구를 더 보고 싶어서.” 바로 이 문장이 제 마음을 울린 거예요. 그래, 이왕 태어난 거 더 보자! 곧장 책을 덮고 선임이한테 같이 간다고 했죠. 그렇게 휴학을 하고 돈을 벌어서 여행을 했어요.
P 프랑스의 셰프 앤서디 보댕은 “여행을 통해 우리가 무언가를 얻듯, 우리도 무언가 좋은 것을 여행지에 남기고 오기를 바란다”는 말을 했습니다. 여행을 통해 우리는 여행지에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요?
M 우리는 뭘 남기고 왔을까, 반대로 우리는 여행자를 볼 때 무엇을 얻지? 라는 생각을 해보니까 ‘여행자만의 에너지’가 답인 것 같아요. 일상을 벗어나 낯선 곳을 즐기고 있는, 설레고 즐겁고 때론 지치지만 또 도전하는 긍정적이고 활기찬 에너지를 남기고 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현지인은 그런 여행자를 보고 일상에서 새로운 기운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S 여행자의 그런 기운이 좋아서 카우치 서핑이나 에어비앤비를 운영하는 사람도 많잖아요.
M 저도 일상을 살다가 여행하는 사람을 보게 되면 두근거리고 응원하고 싶고, 그 날 하루는 왠지 활기가 생겨서 새로운 골목도 가보게 되고…. 그런 식으로 일상을 새롭게 살아볼 에너지를 얻거든요.

ⓒ 정수임
P 여행 파트너로서 서로의 장단점을 꼽는다면요?
S 제가 생각하는 멋지의 장단점은 굉장히 명확해요. 장점은 무던하고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거. 아무래도 저한테 그런 면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니까 더 좋아보이는 거겠죠? 단점도 똑같아요. 생각이 없어 보이는 거. (웃음) 저도 계획적인 성향이 아니니까, 상대방이 해줬으면 좋겠다는 기대가 있었죠. 지금은 그런 점까지 받아들이고 인정하게 됐지만.
M 선임이는 굉장히 적극적이에요. 새로운 것, 무서운 것, 안 해본 것은 무조건 시도해요. 선천적으로 겁이 없죠. 반면, 저는 겁이 많은데 이 친구가 옆에 있다 보니 제가 안 할 법한 것도 시도하면서 훨씬 더 재미있는 여행을 했어요. 단점은 뭐, 없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하겠어? 안고 살아야지. 하하하.
S 그렇게 말하면 내가 뭐가 돼?
M 딱히 여행을 같이 못 하겠다, 그 정도의 단점은 없어서... 딸기 농장에서도 선임이가 포장을 잘해서 돈을 잘 벌었거든요. 가계에 보탬도 되지, 모자랄 게 없어요. 하하하.
P 크게 싸운 적은 없나요?
S 머리끄덩이를 잡을 만큼 크게 싸운 적은 없어요. 분위기가 싸늘해진다거나, 냉전이랄까 그런 적은 많죠. 농담처럼 제가 더 참았다고 말하지만, 저도 알아요. 이 친구가 참아주는 부분이 훨씬 많다는 걸. 제가 짜증을 내거나 신경질을 부릴 때 멋지가 웃음으로 대응하면 돌아서서 미안해지더라고요. 그러면 다음에 좀 더 배려하게 되고, 그랬죠.
M 한 거였니? (웃음)
P 만약 혼자 떠나야 한다면 가고 싶은 여행지는? 혹은 상대방에게 추천하고 싶은 여행지는?
M 추천하고 싶은 여행지는 있어요! 그게 어디든 여행 인프라가 발달하지 않은 나라요. 이동하는 것부터 엄청 힘든. 그런 곳에 선임이를 던져 놓고 저는 거실에 앉아서 선임이의 여행 기록을 재미있게 읽는 거죠. 고생은 얘가 하고 재미는 제가 보고.
S 별로네요.
M 진짜 재미있을 것 같아요. 워낙 글을 잘 쓰니까.
S 멋지는 늘 떠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어디에’ 가고 싶다고 하진 않는 것 같아요.
M 어디든 낯선 곳이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아! 최근에 파리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멀리 에펠탑이 바라보이는 집에서 프랑스 와인을 마시면서 거리의 사람도 구경하고, 그 도시의 ‘낭만’을 느껴보고 싶다. 파리는 〈트래블러〉 촬영 때문에 잠깐 경유한 게 전부예요. 그곳에서의 일상이 제 생각처럼 낭만적일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쯤 경험해보고 싶어요. 그런데 여행을 꼭 떠나야 한다면 좀 더 이국적인 곳으로 갈 것 같긴 해요. 아프리카도 좋고, 중앙아시아도 좋고. 저희 둘 다 익숙하지 않은 걸 좋아해요. 유럽이나 미국처럼 미디어를 통해서 많이 접한 문화권 말고 완전히 낯선 문화권. 둘이 처음 같이 간 인도도 그랬고, 그 이후에 휴학하고 돈 벌어서 간 터키, 이집트도 그랬고. 항상 덜 접해본 곳에 마음이 가더라구요.
S 저도 떠나는 것 자체가 목적인 사람이라 딱히 가고 싶은 곳은 생각이 안 나요. 보통 항공권을 검색해서 젤 저렴한 곳 그중에서도 문화권이 다른, 그리고 안 가본 곳을 선택하게 되죠. 발리는 한 번 가보고 싶어요. 서핑도 해보고 싶고요.

ⓒ 정수임
M 아, 휴식이 필요하시군요?
S 맛있는 것도 먹고. 하지만 저 역시 그 장소 자체가 목적인 건 아니에요. 멋지는 음식, 식문화, 식도락, 음주, 가무를 워낙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여행 콘텐츠를 꼭 한 번 했으면 좋겠어요. 이 친구가 콘텐츠를 뽑아내면 저는 그걸로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유투브를 하든 뭘 하든, 옆에서 콩고물을 얻어먹고 싶어서 적극 추천해요. 어디든 식문화가 발달한 나라! 시국이 안정되면 중국도 좋을 것 같고요.
M 오, 중국!! 제가 또 향신료에 완전 강하거든요.
S 보세요, 눈빛이 다르죠? 저희가 책을 쓸 때도 각자 원고를 쓰고 바꿔 보면서 첨삭하거나 수정하곤 했는데, 멋지가 쓴 글에는 먹는 내용이 정말 많았어요.
P 중국 얘기에 벌써 신나신 것 같은데요. 그럼 마지막으로 향신료에 얽힌 재미난 에피소드 하나만 들려주세요.
S 멋지는 고수를 정말 좋아하고 저는 고수를 못 먹어요. 동남아시아를 포함한 여러 문화권에서 다방면으로 활용하는 식자재다 보니, “고수 빼주세요”라는 말을 각 나라 언어로 맹렬하게 외우고 다녀야 했죠. 그런데 주문할 때 아무리 간절하고 명확하게 전달해도 정작 음식이 나오면 고수가 떡 하니 들어있는 경우가 허다한 거예요. 방금 전에 말로 하고, 번역기에 띄운 문장도 보여주고, 고수를 가리키며 양팔로 엑스(X)를 수차례 그렸는데 그릇에 고수가 둥둥 떠있으니, 나를 무시하는 건가 싶어 열이 뻗쳤죠.
M 선임이가 참다 못해 조리 과정을 감시하더라고요. 주머니 사정이 빤한 배낭여행자답게 주로 허름한 노점상에서 식사를 해결했던 터라, 주방을 엿보는 게 딱히 어렵지 않았거든요.
S 막상 관찰해보니 그들에게도 나름의 고충이 있었어요. 각 식자재를 넣는 순서와 동작이 워낙 손에 익어 자기도 모르게 고수를 넣게 되는 거죠. 명령어가 입력된 기계처럼요. 잠시 후에야 그걸 깨닫고 껄껄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하는데, 뭐 어쩌겠어요. 따라 웃는 수 밖에. 하하하. 결국 저는 고수 문화권(?)에서는 식사를 제대로 못한 적이 많아요. 멋지요? 친구의 고충이 곧 나의 기쁨이라는 듯 두 그릇 원샷하고 절 보며 웃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