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 미술의 열기

Jakarta Art Fever — 자카르타 미술의 열기

전 세계 미술 시장의 다크호스로 떠오른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이 도시가 미술에게 할애하는 열정은 순수하면서 영리하다. 숨은 보석을 찾듯 자카르타의 미술 문화를 이끄는 인물과 공간을 만나는 아트 여행을 경험해보자.

글 허태우
사진 이진욱 picnomad@naver.com
사진 한성필
취재 협조 한아세안센터 aseankorea.org

마찬 미술관
Museum Macan

© MMCAN
© 이진욱
© MMC , Melati Suryodarmo

2017년 문을 연 마찬은 인도네시아 최초의 국제적 현대 미술관이다.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미술 컬렉터이자 기업가인 하리얀토 아디쿠수모(Haryanto Adikoesoemo)가 설립했으며, 영국 런던 기반의 실험적 건축 회사 MET 스튜디오(MET Studio)가 공간 디자인을 맡았다. 자카르타 다운타운에서 좀 떨어진 서자카르타의 케본 제룩(Kebon Jeruk)에 위치한다.

마찬은 개관 당시부터 수많은 기대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비영리재단이 운영하는 현대 미술관이 과연 인도네시아에서 얼마나 영향력을 발휘할지도 관심거리였다. 초창기부터 디렉터 아론 시토(Aaron Seeto)의 지휘 아래 단순히 소장품만 보여주는 화이트 큐브에 그치지 않고 강연, 이벤트, 작가 지원, 문화 사업 등의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동시다발적으로 펼쳤다. 쿠사마 야요이(Kusama Yayoi), 리밍웨이(Lee Mingwei), 슈빙(Xu Bing) 등 거장의 특별전은 많은 대중을 미술관으로 끌어들이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사회와의 지속 가능한 성장도 유도했다. 이러한 활동에 힘입어 마찬은 2018년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 100대 공간’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불과 3년 만에 인도네시아와 세계 미술계에 자신의 존재를 확실히 알린 것. 마찬은 올해에도 줄리안 로제펠트(Julian Rosefeldt)의 전시를 필두로 강렬한 행보를 이어간다.

“국제 규모에 걸맞은 미술관을 설립하기 위해 많은 난관을 헤쳐 나가야 했습니다. 인도네시아에는 아직 인프라가 부족했고 미술관이 들어설 만한 장소를 찾는 것부터 쉽지 않았으니까요. 전시 외에도 교육 프로그램에 힘을 기울이고, 공공을 위한 공간이자 문화 교류를 이끄는 기관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미술관의 소장품은 아디쿠수모가 30년간 수집한 전 세계 현대 미술 작품 800여 점을 기반으로 합니다. 소장품 중 50퍼센트는 인도네시아 작가, 약 25퍼센트는 동아시아 작가의 작품이에요. 그중에는 한국의 미술가 백남준, 박서보, 이우환, 서도호 등의 작품도 포함되죠.

인도네시아의 인구 구성상 미술관 관람객의 약 80퍼센트가 40세 이하입니다. 이는 마찬이 여타 미술관과 차별화되는 지점이자, 저희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도전 과제죠. 대부분의 세계 유명 미술관은 상대적으로 높은 연령대의 관람객이 주를 이루고, 거기에 맞춰서 운영되니까요.

마찬이 없었다면, 인도네시아에서는 대규모 현대 미술 전시회를 볼 수 없었을지도 몰라요. 2019년 우리 미술관을 찾은 관람객은 약 35만 명이었습니다. 특히 야요이의 전시에는 주말마다 6,000여 명이 찾아왔죠. 올해의 첫 번째 기획전인 줄리안 로제펠트의 전시도 의미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최초로 열리는 대규모 비디오 아트 전시거든요.”

- 디렉터 아론 시토

아트 자카르타
Art Jakarta

© 이진욱
© The Leonardi for Art Jakarta
© The Leonardi for Art Jakart, Ronald Ventura

아트 자카르타는 인도네시아의 저력을 뽐내는 아트 페어다. 전 세계 아트 페어의 범람 속에서 동남아시아에서 열리는 페어가 탄탄한 입지를 구축하기란 쉽지 않은 일. 2009년, 바자 아트 자카르타(Bazzar Art Jakarta)로 출범한 아트 자카르타는 한동안 평이한 아트 페어로 오르내렸으나, 인도네시아만의 장점을 살려 변신한 덕분에 최근 미술계에서 급부상했다. 과감하게 아시아 미술계에만 집중한 결과다. 이런 변화를 이끈 인물은 톰 탄디오(Tom Tandio)다. 그는 젊은 인도네시아 작가를 열렬히 후원하는 유명 컬렉터이자 비영리 미술 기관 인도아트나우 재단(IndoArtNow Foundation)의 설립자로 이미 인도네시아 미술계의 유명 인사였다. 그리고 2017년부터 아트 자카르타의 디렉터를 맡아 인도네시아 미술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는 중이다.

“아트 자카르타는 2020년 12회 째를 맞이합니다. 원래 호텔의 볼룸에서 행사를 열어왔는데, 2019년부터 자카르타 컨벤션 센터로 장소를 옮겨 규모를 키웠습니다. 인도네시아 갤러리 30곳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갤러리 40곳을 포함해 14개국 70개 갤러리가 참가했고, 3만9,000여 명의 관객이 방문했죠.

이번 아트 자카르타는 8월 마지막주 3일간 열립니다. 8월에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여름 휴가를 마치고 일상에 복귀하는 시기라 상대적으로 국내 행사에 관심이 높아집니다. 작년에 참가했던 갤러리 중 60곳이 올해에도 다시 참가할 만큼 호응이 좋습니다. 주요 파트너와 스폰서도 매우 만족하는 편이고요.

아트 자카르타는 아시아 중심의 아트 페어입니다. 즉 아시아에 기반한 주요 갤러리만 참여 가능하죠. 그래서 다른 국제 아트 페어와는 다른 아트 자카르타만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정부의 지원도 적극적이에요. BEKRAF(인도네시아 창조 경제 위원회)가 부스를 마련해 젊은 작가의 전시를 열죠.

올해에는 방문객들이 욕야카르타에서 열리는 국제 미술 페스티벌인 아트족(ARTJOG)과 함께 아트 자카르타를 관람할 수 있어요. 이틀 정도 아트족을 즐기고 자카르타로 와서 아트 자카르타에 방문하는 여행을 추천합니다.”

- 디렉터 톰 탄디오

컬렉터 위유 와호노
Dr. Wiyu Wahono

© 한성필
© 한성필
© 한성필

위유 와호노의 미술 컬렉션은 충격과 놀라움을 던져준다. 그의 뚜렷한 소신과 견해를 반영한 컬렉션은 세계화 이후의 시대정신을 과감하게 드러내며, 상업적 가치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을 “제3문화의 아이(Third Culture Kid)”라고 명명한다. 전후 중국에서 탈출해 인도네시아로 망명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독일 베를린에서 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후 20년 만에 다시 인도네시아로 돌아와 정착하기 전까지 국적 없는 삶에 익숙했던 것이다. 삶의 경험은 컬렉션의 방향 설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2000년부터 미술품을 수집하기 시작한 위유는 다양한 미디어 작품을 아우르고, 이제는 세계적 아트 컬렉터로 인정받는다. 인도네시아의 스타 미술가 에코 누그로호(Eko Nugroho)의 그래피티가 그려진 건물 안에 들어선 위유의 사무실은 자신의 소장품을 전시하는 프라이빗 갤러리이기도 하다.

Q 첫 번째 컬렉션은 무엇이었나요?

A 2000년 인도네시아 작가의 작품을 구입한 게 처음이었습니다. 초창기에는 주로 회화와 조각을 수집했죠. 최근에는 동시대성을 증명하는 작품을 많이 수집하고 있습니다. 료지 이케다(Ryoji Ikeda), 나르파티 아왕가(Narpati Awangga), 에두아르도 칵(Eduardo Kac)의 작품처럼요.

Q 좋은 컬렉터의 조건은?

A 저는 작품을 구입하면서 ‘이걸 나중에 팔면 얼마나 돈을 벌 수 있을까’ ‘이 작가가 얼마나 유명해질까’라는 걱정을 하지 않아요. 작품 가격이 몇 배나 뛰었다고 해서 저를 성공한 컬렉터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5,000달러에 구매한 작품이 1만5,000 달러가 될 수도 있고, 내일 바로 500달러로 떨어질 수 있죠. 작품의 가격으로 컬렉터의 수준을 판단하면 안 됩니다.

Q 전시 오프닝에도 자주 참석하나요?

A 오프닝에는 가지 않아요. 그때는 모든 게 비싸잖아요!(웃음) 그리고 저는 아트 페어나 상업 갤러리에 가는 것보다 개인 컬렉션을 선호해요. 컬렉션은 컬렉터를 대변합니다. 누군가의 컬렉션을 보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걸 왜 수집했을까?’ ‘컬렉터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그는 어떤 사람일까?’

Q 현대 미술을 경험하기에 좋은 장소를 추천한다면?

A 얼마 전부터 멀리 떨어진 곳의 12 미술을 찾아가는 걸 좋아해요. 텍사스의 프라다 마르파(Prada Marfa)처럼요. 거기까지 가는데 정말 오래 걸려요. 일단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동한 후, 거기에서 차를 몰고 엘파소(El Paso)까지 8시간이나 달려야 하죠. 차 한 대도 볼 수 없는 도로 위를 달리는 거예요. 엘파소에서도 적막한 도로를 따라 2시간을 더 운전해야 해요. 아무도 없는 사막의 한가운데에서 작품을 마주하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죠. ‘도대체 왜 이 작품이 여기에 있는 거야!’

- 컬렉터 위유 와호노

로 프로젝츠
ROH Projects

© ROH ProjecDavy Linggar
© ROH Projec9 , Bagus Pandega
© ROH ProjecDavy Linggar

로 프로젝츠는 오늘날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갤러리이자 프로젝트 그룹이다. 2012년, 20대 중반의 락사마나 주니어 티르타지(Laksamana Junior Tirtadji)가 설립했다. ‘ROH’는 인도네시아어로 혼(sprit)을 의미하는데, 현대 미술의 정신을 담아내려는 의도로 이름 붙였다고. 주로 신진 작가 발굴에 포커스를 맞춰 설치, 조각, 멀티미디어 아트 등 인도네시아의 실험적 현대 미술을 컬렉팅하고 지원한다. 아트 바젤 홍콩(Art Basel Hong Kong) 등 주요 아트 페어를 통해 로 프로젝츠가 소개한 인도네시아와 서남아시아의 젊은 미술가들은 국제 무대에서 점차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올해에는 갤러리를 이전해 새로운 장소에서 재개관할 예정이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인도네시아에는 현대 미술이라고 언급할 만한 문화가 거의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자카르타는 미술학교가 일찌감치 자리 잡은 욕야카르타와 반둥보다 뒤쳐져 있었죠. 문화적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인프라가 부족했어요. 자카르타의 미술계는 이제 막 깨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찬 같은 곳에서 열리는 대규모 전시가 좋은 예죠.

인도네시아 인구는 2억 6,000만 명이나 되고 복잡한 역사를 경험했어요. 네덜란드와 일본의 식민지였고, 정치적 혼란기도 겪어서 문화의 여러 결이 흐릅니다. 인도네시아가 품은 다양성은 대단한 장점이죠. 그 속에서 발전의 기회를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최근 인도네시아 미술이 전 세계에서 관심을 받는 이유도 그 때문일지 몰라요. 카셀 도규멘타는 인도네시아의 작가 그룹 루앙루파(Ruangrupa) 컬렉티브를 예술 감독으로 선임했죠. 개별성을 넘어서는 인도네시아 미술의 에너지가 도큐멘타에서 어떻게 보여질 지 매우 기대되요.

저는 협업의 힘을 믿습니다. 세계 각 지역의 갤러리와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죠. 필리핀, 홍콩, 타이완, 일본의 갤러리와 컬래버레이션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저희는 국제적 언어를 지닌 작가와 일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단지 인도네시아를 대표하기보다는 어느 곳이라도 대표하는 작가입니다. 또한 트렌드를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가는 작가들을 소개하고 추천하고 싶습니다. 세계화와 정보 범람의 시대를 뛰어넘어 자신만의 작업을 보여주는 작가, 제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변신하는 미술가 말이에요.”

- 디렉터 락사마나 주니어 티르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