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서던 캘리포니아의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서쪽, 태평양을 마주한 샌타모니카는 평일이나 주말, 밤낮 할 것 없이 인파로 북적이고 다들 무언가를 하느라 여념이 없다.

표영소
2020.07.08
댓글

Over the Rainbow in Southern California — 서던 캘리포니아의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눈부신 햇살, 서핑과 일광욕을 즐기는 여유로운 해변 풍경, 별들의 도시 할리우드, 영화배우와 유명인사의 초호화 별장, 야자수가 늘어선 사막의 휴양지. 캘리포니아 남부를 떠올리면 연상되는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다. 분명 사실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태평양의 거친 파도와 사막의 모래 먼지를 넘나드는 자연 환경처럼, 이 지역에는 서로 상반되는 것이 극명하게 대비를 이루며 충돌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각자의 개성을 발하며 다채로운 무늬를 빚어낸다. 샌타모니카에 고급 해변 리조트와 유럽풍 주거 단지 베니스 운하가 들어서는 동안, 한쪽에선 도그 타운(Dog Town)의 10대를 중심으로 프리스타일 스케이트보딩이 탄생했다. 20세기 중반에는 할리우드 스타와 부유층이, 오늘날 전 세계 건축 애호가와 음악 축제 마니아가 찾는 코첼라 밸리에는 대추 농장에서 일하는 중남미 이민자의 가난한 도시도 있다. 미 대륙에서 가장 작은 주 로드아일랜드(Rhode Island)보다 더 작은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은 전혀 다른 2개의 생태계인 모하비 사막(Mojave Desert)과 콜로라도 사막(Colorado Desert)에 걸쳐 있다. 하늘 높이 솟은 고지대의 조슈아 트리가 그토록 신비로워 보이는 이유는 바로 옆 저지대에서 자라는 키 작고 메마른 관목 덕분인지도 모른다. 샌타모니카에서 출발해 코첼라 밸리에 터를 잡은 그레이터 팜 스프링스의 몇몇 도시를 둘러보고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까지 간다. 캘리포니아의 환상, 그 이면을 조금이라도 보기 위해 노력하면서. 때론 현지인과 함께하는 전문 투어, 때론 지도 한 장을 들고 도전하는 셀프 가이드 투어가 여정을 도와줄 것이다.

글 표영소
사진 정수임

샌타모니카
Santa Monica

샌타모니카
© 정수임
© 정수임
© 정수임

아무런 준비 없이 샌타모니카를 방문하면 후회할 수도 있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서쪽, 태평양을 마주한 이 해안 도시는 가이드북의 ‘볼 곳’ 보다는 ‘할 것’ 카테고리에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샌타모니카 비치(Santa Monica Beach)로 가보자. 평일이나 주말, 밤낮 할 것 없이 인파로 북적이고 다들 무언가를 하느라 여념이 없다. 누군가 물에 뛰어들어 서핑, 패들보딩, 카야킹을 즐기는 사이, 또 다른 이들은 발로 모래를 걷어차며 카이트서핑과 비치 발리볼을 즐기고 요가 매트 위에서 열심히 몸을 비튼다. 샌타모니카 피어(Santa Monica Pier)에 가면 영화 〈아이언 맨〉에 등장한 대관람차와 〈포레스트 검프〉나 〈스팅〉의 촬영지, 100년 넘은 회전목마, 도시 어부의 낚시 명당이 기다린다.

그리고 자전거 도로 마빈 브라우드 바이크 트레일(Marvin Braude Bike Trail)이 있다. 해안선을 따라 35킬로미터 길이로 이어지는 이 길을 흔히 더 스트랜드(The Strand)라고 부른다. 걷고 뛰는 사람과 자전거, 스케이트보드, 롤러스케이트, 세그웨이에 올라탄 이들의 무공해 이동 행렬이 승용차 1대가 지날 만한 너비의 포장도로 위로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캘리포니아 남부의 해변 지역을 두루 살펴보기에 이 길만큼 효율적인 루트도 없을 것이다.

샌타모니카아의 속살을 좀 더 제대로 들여다 보고 싶다면  페달 오어 낫(Pedal or not…)을 찾아가자. 전동 자전거를 타고 일대를 돌아보는 소규모 투어를 운영하는 전문 업체다. 위트 있는 이름처럼 스스로의 힘으로 온전히 페달을 굴리든, 전기의 도움을 받든 당신의 자유. 이때 팁이라면 앞서 달리는 가이드에게 최대한 가까이 붙어서 따라가길 권한다. 잭 니콜슨(Jack Nicholson)이나 조니 뎁(Jonny Depp)이 전형적인 비치 사이드 호텔 중 어느 곳에 머물렀는지, 바비(Barbie) 인형을 창조한 루스 핸들러(Ruth Handler)가 살던 집은 어딘지, 샌타모니카 피어에 회전목마가 처음 들어선 것이 몇 년도인지 등등 가이드의 입에서 언제 고급 정보가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투어는 더 스트랜드를 따라 북쪽 샌타모니카 피어와 그 너머까지 갔다가 방향을 바꿔 남쪽으로 이어진다. 제2의 제이 애덤스(Jay Adams), 제3의 아놀드 슈왈제네거(Arnold Schwarzenegger)를 꿈꾸는 청춘들의 놀이터 베니스 비치(Venice Beach)와 머슬 비치(Muscle Beach)까지 둘러본 뒤 베니스 운하(Venica Canal)를 방문하며 마무리하는 코스. 투어는 매일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 진행하고, 대략 3시간 소요되며 요금에 전기 자전거와 헬맷, 간단한 수신호 교육이 포함된다.

팜 스프링스
Palm Springs

팜 스프링스
© 정수임
팜 스프링스
© 정수임
팜 스프링스
© 정수임

야자수가 자라는 샘. 팜 스프링스는 이름 그대로, 산맥에 둘러싸인 건조한 지대에서 샘솟은 물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다. 20세기 초 쾌적한 날씨에서 요양과 휴식을 원한 이들이 발견한 사막의 오아시스는 1940년대 이후 고급 휴양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팜 스프링스의 주 고객은 할리우드 영화배우와 부유층. 로스앤젤레스를 포함한 미 남서부의 주요 도시에서 주말 휴식처로 삼기에 적당한 거리였고, 사생활을 보장받으면서 널찍한 땅과 햇살을 마음껏 향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유럽에선 바우하우스를 중심으로 모더니즘 건축과 디자인이 유행했다. 자, 이제 모든 게 갖춰졌다. 땅과 자본, 새로운 집을 원하는 이들과 새로운 시도에 목마른 건축가. 텅 빈 사막 도시 팜 스프링스는 그렇게 미드센트리 모던(Mid-Century Modern) 건축의 성지가 되었다.

그때 들어선 수많은 미드센트리 모던 양식의 건축물은 1970년대 이후 할리우드와 함께 쇠락을 맞은 도시가 부활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오늘날 팜 스프링스의 인기 요인 중 절반은 미드센트리 모던의 지분이라는 것이 트래버 오도넬(Trevor O’Donnell)의 의견이다(나머지 반은 아마도 리조트일 것이다). 펜실베니아 출신으로, 로스앤젤레스에서 16년을 거주하며 주말 여행지로 팜 스프링스를 즐겨 찾던 그는 현재 리처드 해리슨(Richard Harrison)이 1952년에 지은, 작고 반듯한 하얀 집에 산다. 오도넬이 운영하는 PS 건축 투어스(PS Architecture Tours)는 팜 스프링스의 확실한 건축적 취향을 확인하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 관광안내소로 사용 중인 트램웨이 가스 스테이션(Tramway Gas Station)과 프랭크 시나트라, 엘비스 프레슬리 같은 당대 스타의 집은 물론이고, 직접 차를 운전해 도시 북서쪽 바위 지대에 위치한 에드리스 하우스(Edris House)나 코프만 데저트 하우스(Kaufmann Desert House), 프란츠 알렉산더 하우스(Dr. Franz Alexander House) 등 팜 스프링스에서도 손꼽히는 미드센트리 모던 양식의 건축물 현관 앞까지 데려간다(내부는 매년 봄과 가을에 진행하는 모더니즘 위크(Modernism Week)에만 개방한다).

콘크리트, 유리, 강철 혹은 알루미늄 같은 건축 자재의 고유한 특징을 살리기 위한 미니멀하면서도 대담한 디자인이 팜 스프링스의 광활하고 삭막한 풍광과 어우러져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 모든 것은 미드센트리 모더니스트의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준 동시대의 자본가(혹은 그들의 안목) 없이 불가능했을 지도 모른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지금 그들의 유산을 누리는 것은 누구나 가능하다. 오도넬과 함께하는 소규모 투어는 오전 10시에 시작해 3시간 남짓 소요되고 1인당 110달러다.

팜 스프링스
© 정수임
팜 스프링스
© 정수임

팜 데저트 & 코첼라
Palm Desert & Coachella

팜 데저트 & 코첼라
© 정수임

샌저신토(San Jacinto), 리틀 샌버나디노(Little San Bernardino), 샌타로자(Santa Rosa), 샌고고니오(San Gorgonio)까지 4개의 산자락에 둘러싸인 코첼라 밸리(Coachella Valley). 이 계곡에 팜 스프링스를 포함해 총 9개의 도시가 자리 잡고 있다. 일대를 아울러 그레이터 팜 스프링스(Greater Palm Springs)라고 부른다. 연중 온화한 날씨 덕분에 대부분 겨울철 리조트 타운으로 발달했는데, 팜 스프링스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위치한 팜 데저트도 그중 하나다.

피한(避寒)의 목적 외에 이 도시를 찾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다운타운에 자리한 1.5킬로미터 길이의 쇼핑가 엘 파세오(El Paseo)다. 명품 브랜드 매장과 백화점, 고급 레스토랑과 트렌디한 카페, 갤러리 그리고 건물 사이에 조성한 분수대와 화단. 언뜻 베벌리힐스(Beverly Hills)의 고급 쇼핑 지구를 떠올릴 수도 있지만, 팜 데저트의 ‘로데오 드라이브(Rodeo Drive, 베벌리힐스의 메인 쇼핑가)’에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공공 미술이다. 양옆으로 250여 상점을 거느린 대로 곳곳에 18점의 크고 작은 작품이 설치돼 있는데, ‘엘 파세오 전시(El Paseo Exhibition)’라는 이름에 걸맞게 2년마다 새로운 설치 작품을 선보인다. 이 거리를 누비는 동안 손에 든 쇼핑백 수가 늘어도 마냥 속물처럼 느껴지지 않는 건 단순히 기분 탓만은 아니다.

작은 도시 코첼라 역시 예술적 면모로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당긴다. 세계 각지의 뮤지션과 관객이 찾는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Coachella Valley Music and Arts Festival)이 매년 봄 인근에서 열리는 것. 단 3일 동안 열리는 축제 기간을 놓치더라도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야외 무대가 들어서는 엠파이어 폴로 클럽(Empire Polo Club)에서 몇 블록만 이동하면 이 지역 고유의 문화와 역사를 담은 거리 벽화를 연중 내내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이곳은 대대로 농업에 종사해온 히스패닉의 거주지로, 코첼라 밸리의 여느 휴양 도시와 달리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풍족한 것이라고는 도시의 애칭처럼 햇살 정도? 2014년, 이곳 출신인 아르만도 레마(Armando Lerma)가 시작한 ‘코첼라 월스(Coachella Walls)’는 햇살에 예술을 더했다. 도시 활성화를 위해 시에서도 적극 지원하는 거리 벽화 프로젝트는 현재 진행형. 국내외 작가 14명이 참여한 벽화 13점이 도심을 중심으로 도보 거리에 퍼져 있다. 평범한 농부의 옆모습, 사막의 여인, 미국의 여성을 상징하는 소녀 등 이 지역 히스패닉 공동체의 문화가 담긴 독특한 그림에서 그레이터 팜 스프링스의 이면이 엿보인다.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
Joshua Tree National Park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
© 정수임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
© 정수임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
© 정수임

조슈아 트리는 한 번 보면 쉽게 잊기 힘든 생김새다. 19세기 모르몬교도는 조슈아 트리를 처음 보고 ‘여호와(Joshua)’를 떠올렸고 아일랜드 출신의 전설적인 록 밴드 U2는 훗날 전 세계에서 2,500만 장 이상 팔린 앨범 타이틀에 이 나무(사실 나무가 아니라, 용설란과의 여러해살이 풀)의 이름을 붙였다. 손가락을 쫙 벌려 만세라도 하듯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가지와 그 끝에 구형으로 돋아난 뾰족한 잎의 조화는 분명 보는 이를 묘하게 끌어당기는 매력을 지녔다. 존 레넌(John Lennon), 그램 파슨스(Gram Parsons) 등 이곳에 매료된 1960~70년대 여러 예술가와 매년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을 찾는 200만여 명의 방문객이 그에 대한 근거라면 근거랄까. 물론 〈트래블 앤드 레저(Travel + Leisure)〉 〈아웃사이드(Outside)〉 등의 매체가 뽑은 ‘미국 최고의 캠핑장’ 리스트에 빠지지 않을 만큼 멋진 캠핑 사이트와 보는 것만으로도 아드레날린이 솟구칠 웅장한 바윗덩어리도 한몫할 테지만.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은 총면적 3,199제곱킬로미터로, 규모가 큰 편은 아니다. 같은 캘리포니아주에 속한 데스 밸리(Death Valley, 1만3,650제곱킬로미터)와 비교하면 확실히. 그런데 바로 그 점이 이곳의 장점이기도 하다. 하이킹, 캠핑, 등반 등 다양한 액티비티를 경험할 수 있는 요소가 콤팩트하게 모여 있어 짧은 일정으로 아웃도어를 즐기기에는 제격인 것. 초기 정착민의 흔적이 남아 있는 키 랜치(Key Ranch) 투어, 암벽 등반가와 커피 한잔, 밤하늘 별 아래에서 배우는 공원의 역사와 문화 등 파크 레인저(Park Ranger)가 이끄는 프로그램도 다채롭다. 키 랜치 투어(1인 10달러, 최소 30일 전 예약)를 제외하면 별도의 비용이나 예약도 필요 없다. 이도 아니면 국립공원 안내소에서 지도를 챙겨 하이킹을 해도 되고, 원더랜드 오브 록스(Wonderland of Rocks)나 홀 오브 호러스(Hall of Horrors)의 바위를 기어올라도 된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무조건 점보 록스(Jumbo Rocks)를 포함한 8개의 캠핑장 중 한 곳에서 하룻밤 머물기를 추천한다. 조슈아 트리와 바위로 둘러싸인 풍광 속에서 모닝 커피를 마시는 기분을 무엇에 비할 수 없을 테니.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
© 정수임
작가와 대화를 시작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