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 박. 박찬일과 박준우 인터뷰
여행자의 경험을 제한하는 가장 큰 장애물은 언어나 문화가 아니라, 편견과 고정 관념이다. 여행지에 대한 선입견은 종종 우리의 시야를 좁힌다. 타인과 세상을 향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데에서 여행의 당위성을 찾는다면, 우리는 여행자로서 한 지역에 얽힌 다채로운 문화와 역사, 인종, 계층을 어떻게 바라보고 경험해야 할까? 그 답에 조금이라도 힌트를 얻고자 두 사람을 만났다. 주방을 노동의 현장으로 삼고 있지만, 요리가 그저 밥벌이의 수단으로 매몰되지 않기를 바라는 듯 여행을 떠나고 글을 쓰며 먹고 마시는 일을 탐구하는 셰프 박찬일과 박준우. 요리 분야와 종목은 달라도 서로의 취향과 철학을 존중하는 선후배이자, 술 한잔에 때론 즐거움을, 때론 고충을 함께 나눌 두 셰프에게 음식 그리고 그 너머에 존재하는 사람과 문화를 대하는 태도를 듣는다.
인터뷰 정리 표영소
인터뷰 진행 허태우
사진 신규철
C 박찬일 / J 박준우
어떻게 이탈리아와 프랑스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문화에 대한 호감인지, 맛에 대한 호감인지 궁금합니다.
J 저는 별 생각이 없었어요. (웃음) IMF 이후 아버지가 벨기에로 발령이 나서 온 가족이 따라가게 됐죠. 그곳 대학에서 현대 문학을 전공했는데, 중간에 그만뒀어요. 회사 생활을 하면서 용돈 벌이로 잡지사 통신원, 통역, 한국기업 주재원 등을 전전하다가 갑자기 파리로 요리 유학을 간 거예요. 벨기에에서 제가 살던 곳이 프랑스어권이었고, 영어나 스페인어를 새로 배우긴 어려우니 프랑스로 가자, 기왕 가는 거 수도인 파리로 가자. 그렇게 1년을 재미있게 놀다 왔어요. 벨기에에 8년 살았고, 파리에 1년 살았어요.
C 그런데 프랑스 사람은 벨기에 사람을 아주 우습게 보지 않아? 촌놈의 상징으로 여기잖아요. 벨기에 사람도 프랑스를 싫어하긴 마찬가지고. “잘난 것도 없으면서 잘난 척이야” 하면서.
요리 쪽은 어떤가요?
J 벨기에 사람도 프랑스랑 똑같이 ‘우리 음식은 맛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그러면서 프랑스 요리를 괜히 음식에 쓸데없는 짓하고 비싸게 팔고, 정작 본질이 뭔지 모른다고 비판하죠. 이탈리아 사람이 프랑스인을 무시할 때 하는 말이랑 비슷해요. 반면 프랑스 사람은 기본적으로 벨기에 음식이 촌스럽다고 생각하죠.
벨기에에서 파리로 요리를 배우러 갔을 때는 순수하게 요리가 좋아서 가신 거예요?
J 아뇨. 직장에 다니면서 돈을 벌고 생활인으로 살수록 다시 학교로 돌아갈 확률이 줄어드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회사 일이 전문적인 것도 아니고 미래도 불확실하고요. 뭔가 먹고 살 게 필요할 것 같은데, 벨기에 직업 전문 학교에서 요리 수업을 1년 동안 청강한 적이 있어요. 기왕 발 담근 거, 미식의 중심은 파리라고 하니 한 번 가보자, 그런 마음이었던 거죠.
C 저는 좀 달라요. 처음부터 요리를 업으로 삼겠다고 결심한 것도 아니고, 취미로 배운 것도 아니었어요. 먹고 살려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 요리사라는 게 있더라고요. 당시 요리사는 사회적으로 거의 바닥에 해당하는 직종이었죠. 발전 가능성이 없으니까. 그런데 딱 한 가지 생각한 건 있었어요. ‘먹는 장사를 하면 굶어 죽지는 않겠다.’ 흔히 ‘요리 기술이 있으면 굶어 죽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그게 참 코믹한 건데, 빵 공장에 다닌다고 안 굶겠어요? 해고 당하면 똑같죠. 그런 관습적인 생각에 스스로 속은 셈이에요. 먹고 살 게 중요했으면 차라리 타일공이나 설비공이 훨씬 유리했을 지도 몰라요. 물론 일은 힘들죠. 그런데 요리사는 안 힘든가? 요리를 먹고 살 방편으로 하겠다는 생각이라면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열심히 노력해서 15년차쯤 되면 그만한 보상을 받아야 할 텐데, 요리사는 그런 경우가 아주 드물어요.
J 아, 그러고 보니까 저도 파리 유학 고민할 때 선택지가 두 가지였어요. 하나는 인테리어 학교였고 또 하나가 요리 학교였는데, 인테리어는 최단기 코스가 2년, 요리는 1년인 거예요. 그래서 요리를 선택한 것도 있었죠. (웃음)
C 요리사가 되기 전부터 <일포스티노> <시네마 천국> <자전거 도둑> 같은 영화를 보면서 이탈리아를 좋아했어요. 여행으로 가보니 음식도 정말 맛있어요. 양식에 대한 고정 관념을 다 무너뜨리더라고요. 가격도 저렴하고, 탄수화물 위주에, 여러 식자재를 사용해서 만들고, 간결한데 맛있어. 내가 술을 좋아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술과 함께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음식인 거예요. 다른 얘기지만, 그때 먹었던 이탈리아 가정식, 우리나라로 치면 비빔밥 같은 거겠죠? 나중에 그 맛을 내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그 맛이 안 나더라고요.
그 맛이 정말 구현이 안 되던가요?
C 그게 안 돼요. (박준우 셰프에게) 너도 안 되지?
J 음…. 어떤 음식이냐에 따라 다르죠. (웃음)
C 디저트도 안 된다고 생각해, 나는. 이건 심리적인 문제예요. 식자재를 그대로 공수해서 시도해도 안 되더라고요. 물론 현지에서 먹어본 사람이 “똑같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는데, 내 입에는 아니에요. 그래서 포기했어요. ‘난 그냥 내 식대로 해야겠다’ 하고요. 웬만하면 한국 식자재로 만들어요. 원래 음식은 그 나라에 가면 그 나라 식자재로 하는 거예요. 이건 내 주장이 아니고요. 폴 보퀴즈(Paul Bocuse), 조엘 로부숑(Joël Robuchon) 같은 셰프가 홍콩이나 일본에서 프렌치 레스토랑을 열었잖아요. 다들 현지 식자재로 요리를 해요. 싸고 싱싱하고 맛있으니까. 다른 예를 들면, 서울에서 먹는 모차렐라는 모차렐라가 아니에요. 하루키가 그랬죠,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두부는 오늘 만든 두부라고. 그걸 포장하고 유통하면 미묘한 맛이 다 사라져버려요. 이탈리아에서 모차렐라를 만들어서 포장, 항공 운반, 식품 검역, 국내 이동까지 다 거쳐서 소비자한테 전달되기까지 1달이 걸리는데, 이탈리아에서 먹는 모차렐라와 같은 맛일 수가 없죠.
J 저는 현지에서 먹던 음식과 얼추 비슷하게 맛은 내요. 그런데 일단 박찬일 셰프가 말씀하신 것처럼 현지 식자재를 구하기가 어렵고, 구할 수 있을지언정 가격이 비싸진다는 게 문제예요. 현지에서 1만 원으로 먹던 음식을 여기서 5만 원 주고 먹는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하니까요. 한마디로 어느 정도는 흉내는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100퍼센트 구현은 어렵다고 할 수 있겠죠.
C 그건 정신의 문제라니까. 같은 식자재로 현지인이 요리한다고 해도 같은 음식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공기의 밀도가 다르잖아요. 인간의 힘으로는 운반할 수 없는, 시공간의 한계. 그러니 그곳에 가서 먹어야 하는 거고요. 음식을 맛보는 건 정서적 경험이니까요. 그게 바로 여행이 필요한 이유 아니겠어요?
그런데 프랑스의 디저트라든지, 이탈리아의 가정식이라든지, 다른 나라의 식문화를 우리나라에 알리고 싶다, 그런 개념으로 접근하면 저렴한 식자재를 사용해서 비슷하게 맛을 내고 많은 사람이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합리적인 방법 아닐까요?
C 그건 철학의 문제이고, 자유로운 거예요. 나는 가능하면 그 지역에서 (중략), 그러니 올리브는 사용하지 않겠다는 거죠.
J 레몬도 안 쓰죠.
C 그런 게 철학의 측면에서 동의가 되는 거예요. 물론 나는 레드제피처럼 일부러 ‘안 쓰겠다’ 정해놓고 요리하는 사람은 결코 아니지만요. 수입해서 쓸 수 있는 건 쓰고 가능하면 한국에서 나는 식자재로 요리하려고 하는 거죠. 그렇다고 그게 이탈리아 요리가 아니다, 라고는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간혹 어떤 비평가나 기자가 내 요리 중에 한국식처럼 보이는 몇몇 메뉴만 보고 ‘퓨전’이라고 해요. 그런데 그건 단어의 뜻을 잘 모르고 하는 말이에요. 퓨전은 의도적으로 서로 다른 문화를 교배, 교합해 더 나은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한 하나의 태도인데, 나는 이탈리아 요리를 하되, 한국에서 나는 대체 식자재로 내 스타일을 만들어낸 것이죠.
J 물론 음식 문화를 알리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하지만 한국에서 프랑스 레스토랑 혹은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 정통 레시피를 고수하는 건 무리 같아요. 대신 그 욕심을 음식 자체가 아니라 문화를 알리는 것으로 풀 수 있겠죠. 이 음식을 현지에서 어떻게 먹는지, 왜 먹는지 등에 대해 떠들고 다니는 것이 그 문화를 경험해본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부분 같아요.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죠. 이탈리아 음식을 예로 들면, 이제 ‘볼로네제 스파게티’라는 말을 많이 안 쓰잖아요. 볼로네제에는 탈리아텔레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꽤 많은 이들이 알게 된 거죠.
갑자기 궁금해진 건데, 요즘 베이커리나 디저트 전문점 가면 ‘프랑스산 유기농 밀가루’로 만든 제품이라고 강조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정말 차이가 있나요?
J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국내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건 미국산 밀이거든요. 정확한 수치는 모르지만, 미국산보다 프랑스산 밀이 조금 더 퀄리티가 나은 편이라고 해요. 그래서 가격이 더 비싼 것도 있고요.
C 다른 견해도 있어요. 프랑스 밀은 국내에 수입할 때 빻아서 들여와요. 반면, 미국, 캐나다, 호주산 밀은 통밀로 수입해서 국내에서 제본하죠. 그래서 후자가 오히려 선도나 퀄리티가 훨씬 좋다고 주장해요.
J 그것도 좀 더 자세하게 들여다봐야 해요. 프랑스에도 좋은 밀과 나쁜 밀이 있고, 미국에도 좋은 밀과 나쁜 밀이 있잖아요? 수입하는 과정에서 어떤 제품을 수입하는지 따져봐야 하는데, 판매자나 소비자나 그렇게까지 수고를 들이지 못하니 단순하게 프랑스산인지, 미국산인지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건 사실이에요. 무조건 프랑스산이라서 좋다고 하기는 어렵죠.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벨기에산 초콜릿이 사실 알고 보면 벨기에에서도 안 먹는 벨기에산 초콜릿인 것처럼요.
최근 노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긴 했는데, 동시에 전 세계의 음식을 푸드 코트에서 먹을 수 있는 시대기도 하죠. 이 시대의 로컬 음식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요?
C 오래됐다고 전부 로컬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로컬성을 더 많이 갖는다고 할 수는 있겠죠. 사전적 의미가 유효하다고 봐요. 지역산 식자재로 그 지역 사람이 만들어서 먹는 지역 음식. 기본적으로 로컬 음식은 사람들이 선의로 대하잖아요. 예를 들어, 홍콩을 잘 이해하기 위해 현지인이 먹는 현지 음식을 먹는다는 식으로요.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음식이 굉장히 인문학적인 분야예요. 요리 자체는 자연 과학에 해당되지만요. 타지에서 그곳 사람들과 함께 앉아서, 때론 낯설고 마음에 안 드는 음식일지라도 경험하고 수용하려는 노력을 하는 거죠. 홍어에 도전하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용감한 외국인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좋아해요? 중국 여행하면서 우리가 샹차이(香菜)를 맛있게 먹는 걸 보면 그들이 좋아하잖아요? 로컬 음식에 인간의 감정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우리 같은 요리사나 여행자는 로컬의 과학적, 이론적 의미가 아니라 더 넓은 범위의 로컬 음식에 동의하는 거죠. 일단 로컬 음식이 재미있잖아요. 가격도 저렴하고. 물론 파리 로컬 음식은 싸지도 않지만!
J 파리 로컬 음식도, 4구에서 먹느냐, 20구에서 먹느냐 느낌이 달라지죠. (웃음) 우리가 규정하는 이런 단어들이 참 모호해요. 로컬도 비건이랑 비슷하게 양극단으로 풀이가 되더라고요. 비건 같은 경우가 버섯 균류부터 죽은 동물의 살점까지 일체 먹지 않는다, 라는 단순한 식자재적 관점도 있지만, 일종의 사회 운동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비건에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도 있는 걸 테고요. 로컬도 똑같죠. 한쪽에서는 융통성 있게, 현지인이 거부감 없이 먹는 음식은 모두 로컬이라고 한단 말이에요. 사회적 측면에서 해석하려는 이들은 ‘우리 선조가 먹어왔고, 우리 땅에서 난 식자재로만 만든 우리의 전통 음식’이 로컬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죠. 그렇게 되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전혀 달라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그들이 얘기하는 로컬에 의문을 갖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갈비찜이 우리나라 전통 음식이라면 언제부터 이 음식에 당근이 들어갔는가? 이 당근이 한반도에 들어온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게 과연 로컬이고, 전통 음식인지 그 해석에 오류가 생길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거든요.
C 통상적으로 3대가 지나면 토종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봐요.
J 3대가 한 동네에서 살면 토박이라고 하잖아요. 그런 식으로 통용해왔는데, 이것을 얼마나 엄격하게 적용할 것이냐, 그 범위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이냐, 그런 문제가 있는 거죠.
만약에 로칸다 몽로가 문을 연 지 70~80년이 지났다, 그러면 사람들이 몽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로컬 식당이라고 해야 할까요?
C 몽로까지 갈 것도 없어요. 스파게티를 예로 들면, 우리 다음 세대에는 스파게티가 한국 음식이에요. 전해진 시기부터 3대가 지났으니까. 사람들이 스파게티라는 음식을 인지하기 시작한 게 대략 1970년대,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서울올림픽 이후예요. 이제 50년 정도 지난 거니까 사실 얼마 안 됐죠. 아직은 외래 음식인데, 현재 아이들 학교 급식에서 스파게티가 밥찬으로 나오거든요? 이 정도면 ‘로컬화’가 된 거죠. 앞으로 또 30년이 지나면 스파게티가 한국 음식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어요.
J 가장 전형적인 한국식 활어회 상차림에 콘치즈가 안 나오면 허전합니다. (웃음) 그런데 사회운동적 의미에서 로컬을 얘기하려고 하면 엄청나게 어려워져요. 제가 굉장히 인상 깊게 본 스위스 내추럴 와인 생산자 인터뷰가 있는데, 그 사람은 세계적으로 내추럴 와인에 열광하는 트렌드가 너무 싫은 거예요. 이유인 즉슨 본인은 친환경적 와인을 만들었는데, 이 와인이 어느 순간 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세계로 퍼지기 시작했다는 거죠. “내추럴 와인을 소모하는 방식이 내추럴하지 않은데, 이게 어떻게 내추럴 와인인가?” 라며 열변을 토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렇게 따지면 세계에서 먹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C 배나 비행기를 타면 그건 이미 유기농이 아니에요. 자본이 더해진 유기농도 엄밀히 말하면 유기농이 아니고요. 땅과 농부, 사람 모두 살리고, 농업이 자본에 잠식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 유기농 운동의 출발점이잖아요. 미국 뉴멕시코주에서 지하수를 끌어다 물을 주고, 임금이 저렴한 멕시칸 이주민이 손으로 일일이 벌레를 잡아서 재배한 상추를 뉴욕까지 비행기로 운반해서 소비하는데, 이게 과연 유기농이냐. 푸드 마일을 따지면 엄청날 거예요. 미국 내에서도 그런 비판이 있어요. 단순히 농약을 안 친 게 유기농은 아니라는 거죠. 그럴 거면 차라리 가까운 지역에서 관행 농업으로 재배한 식자재를 소비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J 철학이 시장을 못 이기는 거죠. 이상이 자본을 이길 순 없어요.
사람들은 유기농이든 내추럴 와인이든 그런 트렌드를 좇아 음식을 먹으러 다니면서 SNS에 자랑하잖아요.
C 박준우 셰프 말대로 철학은 사라지고 자본만 남는 거죠. 그걸 추수하는 사람도 생기고. 이런 유행이 너무 피곤한 것 같아요. 그중에 맛있는 것도 있지만, 맛없는 것도 있어요. 맛이 없어도 유행이니까 먹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거잖아요.
J 사람들이 SNS에 음식 사진을 올리는 이유는 자랑하기 가장 쉬운 게 음식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집이나, 자동차, 옷, 가방… 그런 것에 비하면 음식은 기회 비용 측면에서 가장 효율적이죠. 같은 맥락에서 요즘 젊은 사장, 셰프, 소비자 사이에서 SNS용으로 인기 있는 디저트가 구움과자예요. 보통 고급 케이크 한 조각을 사면 9,500~1만 원인데, 구움과자는 2,500원 정도면 하나 사서 사진 찍어 올릴 수 있거든요. 얼마 전에 부산의 핫하다는 거리에 갔더니 전부 구움과자 매장만 있더라고요. 무스 케이크나 파이를 파는 곳은 한 곳도 없었어요. 더 싸고, 더 있어 보이는 것에만 몰리죠.
우리나라의 음식 평론 분야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외국을 보면 뉴욕 타임즈, 르몽드 같은 매체의 푸드 칼럼을 비롯해 음식 분야에서 신뢰할 평론가가 있는데요.
J 외국은 대중매체의 목소리가 다양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반대로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한 거고요. 사람들이 음식 평론가라고 생각하는 몇몇이 있긴 하죠. 그런데 그들의 목소리가 그렇게 크지 못하고, 만약 목소리를 크게 낼 경우 대중이 그것을 얼마나 수용할 수 있는지가 문제예요. 네이버 파워블로거가 그 시장을 선점한 것도 국내에 음식 평론이 자리 잡지 못한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겠네요. 근본적으로 우리나라는 대중이 원하는 목소리 또는 대중매체에서 추구하는 목소리가 다양하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요. 프랑스에서 〈피가로〉 〈르몽드〉, 영미권에서는 〈가디언〉 〈뉴욕타임즈〉 등 각자의 목소리를 내는 매체가 있고, 그 안에서 각 칼럼을 담당하는 다양한 성향의 평론가도 나올 수 있는 거죠.
C 그리고 그런 매체들이 권위가 있고요. 우리나라는 매체 스스로 그 권위를 포기한 점도 있어요. 전혀 경험 없는 기자한테 맡긴다거나 돈을 받고 기사를 실어준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백파 홍성유의 〈주간조선〉 연재물이 음식 평론의 시작에 가깝다고 할 수 있죠. 그 전에 동아일보 기자 출신의 홍승면 선생이 〈주부생활〉에 평론다운 음식 칼럼을 연재했어요. 그런데 백파의 글이 훨씬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거든요. 사실 그의 글은 음풍농월이고 음식에 대한 지식은 거의 없어요. 대부분 술 마신 이야기인데, 당시에는 그 정도 수준을 평론이라고 했던 거죠.
J 제가 이 업계에 발을 들인 초기에 모 월간지에서 레스토랑 평론을 시작했어요. 몇 회를 진행했는데, 레스토랑이 잡지사에 비공식적 항의를 하기 시작한 거예요. 말하자면, 셰프가 편집장이랑 술자리를 하면서 ‘나한테 왜 이러냐’는 식으로 따지는 거죠.
C 예전에 스스무 요나구니 셰프가 요리 잡지 〈쿠켄〉에 연재한 레스토랑 비평 칼럼도 괜찮았어요. 뉴욕에서 요리 경력을 쌓고 국내에서 최신 서양 요리를 선보인 셰프인데, 외국인이라 비교적 객관적이고 날카롭고 좋은 내용도 있었죠. 개인적으로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음식 평론으로는 최고 수준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미 형성돼 있는 식당의 팬덤이 비평을 수용하지 못하고 격하게 항의하는 바람에 당시 매체가 상당히 어려움을 겪었어요. 블로거나 개인이 친소 관계에 따라 특정 레스토랑을 소개하고 띄워주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비평을 통해 반성하거나 발전을 꾀하는 게 아니라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풍토는 우리나라에서 음식 평론이 발 딛지 못한 이유예요. 기본적으로 비평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국인의 정서와도 관련이 있고요. 외국에서 비평이 발달한 것은 독자의 수준과도 관련이 있죠. 우리나라처럼 한쪽으로 쏠리거나 대중적인 것에만 관심이 집중되면 힘들어요. 물론 우리나라에도 비평을 수용할 토대가 있긴 하지만, 하나의 문화를 형성할 만한 파괴력은 약한 거죠. 신문 같은 매체가 예전의 영향력을 잃어버린 시대에 비평이나 평론을 어떤 채널에서 해야 할지 애매해진 것 같기도 하고요.
만약 두 분이 이탈리아, 프랑스나 벨기에에서 자신만의 가게를 차린다면 어떤 음식을 선보이고 싶나요?
C 한식 해야죠.
J 저는 안 할 건데요. (웃음)
C 해외에 있는 한국 식당은 현지에 사는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현지인을 대상으로 한 한식당이 점점 늘고 있어요. 정통 한식도 가능하겠지만, 그보다는 현지인이 좋아할 요소를 잘 잡아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좀 더 감이 있지 않을까?
J 저도 한식이요. 일단 장사를 할 거면 물 건너온 것을 해야죠. (웃음) 외국에선 한식이고, 한국에선 양식. 아무래도 본질보다는 외형적인 요소에 끌리는게 있으니까요. 한국에서니까 파스타를 2만 원씩 주고 사먹는 거 아니겠어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즐거움을 느끼는 분야는 양식입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J 태생적으로 꼰대를 싫어하는데, 한식을 하면 훈수를 두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양식을 한다고 하면 아무도 훈수를 안 두거든요. (웃음) 사실 제 요리가 고만고만한 수준이지만, 벨기에에서 7~8년, 파리에서 1년 살다 왔고, 〈냉장고를 부탁해〉나 올리브TV에 출연한 셰프라고 하면 사람들이 아무 말도 안 해요. 그래서 양식을 하는 게 한식에 비해 훨씬 자유롭고 재미있는 것 같아요.
여행과 음식 이야기를 해볼게요. 여행 시 식당을 고르는 나만의 기준 혹은 노하우가 있나요?
J 여행 첫날은 버리는 날이라고 생각하고 대충 때워요. 대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골목과 가게 분위기를 살펴보는 거죠. 한국에서나 외국에서나 동네 사람 같은 편안한 복장의 중장년층, 노년층이 많은 음식점을 신뢰하는 편이에요.
C 제가 좋아하는 맛집은 심리적으로 편안한 곳이에요. 비싸고 폼 잡는 곳보다 싸고 편안하고 적당히 맛있는 집, 생활인이 다니는 집. 그게 바로 로컬 맛집이라 할 수 있겠죠. 일본에선 노렌만 봐도 안다고 하잖아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고요.
J 저희 둘이 같이 아이슬란드와 홍콩 출장을 갔었는데, 기준이 명확하시더라고요.
C 내가 좋아하는 정서가 있어요. 싼 가격을 위해서 무언가를 희생하고 있는 곳. 약간 지저분하고, 홍콩이라면 러닝셔츠 입은 아저씨도 앉아 있고. 꼭 맛있는 집을 찾는 게 아니라, 감정적으로 만족할 만한 집인 거예요. 그런 집이 맛있기까지 하면 완벽해지죠.
J 그런 곳에 가면 기분 좋은 미소가 절로 나오시던데요.
먹어본 음식 중에 어떤 게 가장 인상적이었나요? 아니면 음식과 관련된 여행의 순간이라거나.
J 음식이야 다 인상적이죠. 항상 색다르고 항상 배우게 되니까요. 특이한 음식 중 기억나는 건 페루 쿠스코에서 먹은 꾸이(cuy). 기니 피그 요리요.
C 어디를 가나 제일 먼저 요리사한테 시선이 가는데, 특히 홍콩의 요리사가 기억에 남아요. 홍콩은 빈부차가 심하잖아요. 대중 식당에 가보면 식기나 조리도구가 형편없어요. 한 번은 저렴한 중화 도시락을 파는 식당에 갔는데, 테이크 아웃 주문이 대부분이라 내부는 굉장히 좁아요. 오븐 열기가 가득한 그 좁은 주방에서 러닝셔츠 차림의 요리사 8명이 나오는 광경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홍콩에 처음 갔을 때 한 요리사한테 물어보니 한 달에 하루 쉰다고 하더라고요. 유럽의 요리사도 한때 그렇게 일하긴 했지만, 그건 고급 요리를 배우려는 사람에 한해서였죠. 그런데 홍콩의 요리사는 성공을 위한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생계를 위한 거잖아요. 노동에 찌든 어두운 표정, 피곤한 얼굴…. 같은 요리사로서 저렇게 일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파요. 동정이 아니라 그들의 인내심에 놀라게 되는 거예요. 그들의 잔근육이나 그들의 요리가 범상하게 보이지 않는 거죠. 기술자의 힘에 놀란다고 해야 할까요.
여행을 할 때 음식과 관련된 나만의 의식(ritual)이 있나요?
J 여행에서 돌아올 때는 무조건 그 나라의 술을 사옵니다. 여유가 있으면 음주용으로 와인 1병, 장식용으로 증류주 1병.
C 맥주를 좋아하니까, 현지 맥주를 마셔보죠. 관리가 잘된 맥주를 마시면 기분이 너무 좋아요. 그런 곳은 음식도 맛있지요. 흔히 일본 생맥주가 맛있다고 하는데, 취재를 다녀보니 일본에서도 편차가 심해요. 누가 일본에서 생맥주 맛있는 곳을 물어보면 추천해주는 곳은 공항 출국장 카페. 회전이 상당히 빠르고 위생이 철저해서 맛이 없을 수가 없죠. 단점이라면 비싸고 대부분 플라스틱 잔에 나온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한 곳은 백화점이에요. 거기도 위생 관리를 잘 하니까요.
J 생각해보니 공항에서도 맛있는 음식을 찾으려면 찾을 수 있겠네요. 일본 공항의 생맥주와 헬싱키 공항의 연어는 진짜 맛있었어요. 저희 같이 먹었잖아요! 진 큐어드 살몬(Gin-cured salmon).
C 연어의 본고장이라고 다 맛있는 건 아니겠지만, 그때 그 집 연어는 정말 맛있었어요. 연어 자체도 질이 좋은데 숙성까지 완벽했죠. 아, 또 먹고 싶네!
박준우 셰프님 몽로 자주 가시잖아요 몽로에서 어떤 음식을 가장 좋아하세요?
J 생맥주요. (웃음)
C 우리집 생맥주 관리는 완벽하지!
요리는요?
J 사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건 몽로 생맥주에 김치 안주, 몽로 생맥주에 보타르가(bottarga, 어란) 안주거든요. 그런데 음식이라면, 몽로에서 콰란타 파스타, 홍어 튀김을 처음 런칭하실 때 한 번 먹어봐라, 하시면서 주신 것이 특별히 기억에 남아요. 그 공간에서의 특별한 추억이라 그런 것 같아요. 음식 경험은 감정이나 감성도 중요하잖아요.
여행과 음식에 관한 작품을 추천해주신다면?
C 중국을 여행하려면 〈공자의 식탁〉을 읽어 봐야죠. 중국 음식 문화를 잘 설명한 책이에요. 영화 〈음식남녀〉에선 회양 요리가 나오는데, 중국 요리가 얼마나 다채로운지 보여주는 작품이죠. 일본에 가려면 〈오사카는 기꺼이 서서 마신다〉. (웃음)
J 개인적으로 여행을 갈 때마다 다시 한 번 보는 책이 〈Larousse Encyclopedia Of Wine〉이에요. 전 세계 와인 산지와 와인 종류를 설명해 둔 책인데, 여행을 가기 전에 한 번씩 훑어보면 가서 조금 더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만약 박준우 셰프가 모든 일정을 직접 짜서 박찬일 셰프와 함께 여행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J 안 갈 겁니다.
C 나도 안 가.
C · J (동시 웃음)
J 같이 가면 재미는 있을 것 같은데, 어디가 좋을까요? 아, 동남아 휴양지 같은 데 가면 좋을 것 같은데요. 그래야 국내에서 요리사, 작가로서 받은 스트레스나 긴장감을 내려놓고 기분 전환을 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C 미얀마나 라오스 가자. 거기가 동남아시아 중에서도 덜 개발된 곳이라 좋아.
박찬일 셰프는요?
C 음, 내가 잘 아는 곳 중에… 팔레르모! 팔레르모에 데려 가야지. 시칠리아 와인도 실컷 마시고 길거리 음식, 시장 음식, 바가지 잔뜩 씌워 파는 음식 전부 먹고. 시칠리아는 디저트도 끝내 준다고. 아랍풍 디저트 말이에요. 마지팬이 다 거기서 나온 거잖아.
J 네, 팔레르모에 가자고 하십니다. (웃음)